종교

천국 상급에 대한 바른 이해7/ 양과 염소의 비유와 상급/ 영생과 영벌 / 실족하게 하는 죄/ 비유해석방법

GODblessus 2023. 2. 13. 20:19






양과 염소의 비유와 상급






비유의 해석의 원리는 무엇인가?
 
1)알레고리 해석금지-이중비유금지
 
비유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당시에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익숙한 개념을 빌려와 접목시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기에 비유를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것은 이중비유가 되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목회자가 복음서의 비유들을 전부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설교하였고 원 의미를 잃어버린채 성도들을 가르쳐왔습니다.   


알레고리로 해석하면 설교하기가 쉽고 목회자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의로 해석하여 쉽게 성도들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에 걸면 코걸이,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상실합니다.  특히 이단들이 성경을 비유로 풀어가면서 신구약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짜집기하여 신자를 미혹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2)윤리적,교훈적 해석금지
 
비유는 교훈적으로 해석하면 해석이 꼬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눅16:1-16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청지기가 주인의 빚을 자기 맘대로 탕감해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교훈적으로 해석하면 이 부분이 막히게 됩니다.   따라서 교훈적 해석을 금지하고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3)앞뒤의 문맥에 맞추어 해석한다
 
비유는 앞뒤 문맥이 있습니다.   비유의 대상자가 있고 듣는 대상이 있고 앞뒤 사건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과 문맥을 파악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4)1개의 영적인 원리,결론만 도출한다 
 
성경의 많은 비유는 그 스토리 속에서 화자가 의도한 1개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예수님 시대에서의 의미를 연구하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와 상받는 조건


본문은 종말에 있을 양과 염소의 분리에 대해 말씀합니다.    양과 염소를 방목할때는 같이 섞어 놓다가 밤이 되어 우리에 넣을 때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리하여 우리에 넣습니다.   그 이유는 양은 추위에 잘 견디고, 염소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염소는 좀더 따뜻한 우리에 넣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양과 염소의 분리는 좀 상식적이지 않고, 신학적으로도 좀 충격적인 부분입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성도들이 생각하기에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서 직분을 맡아서 봉사하고 헌금 잘하며 기도를 열심히 하고 전도하며 선교하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당연히 상을 얻고 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양이 되는 조건에는 이러한 상식적인 생각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고 혼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내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종말에 가서 상을 받기는 커녕 주님이 나를 염소로 평가하여 심판의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하겠습니까?   그래서 염소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억울해 합니다.    
[아니 주님 우리가 언제 어느 때에~아니하더이까] 라고 항변하며 억울해 합니다.
 
마 25: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양과 염소의 비유의 종말론적 배경
 
본문에 나오는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는 내용은 단순히 구제하고 도와주고 착한 일을 많이 해라(행위구원적 의미)라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이신칭의의 교리에 익숙한 현대의 교인들에게 양과 염소의 분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냐?  라는 혼돈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이나 진보적 교회는 선행 구원론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24장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24장에는 종말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종말 시대에는 많은 미혹이 있습니다.  


<마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종말시대에는 많은 재난이 일어납니다.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종말시대에는 믿는 자들이 환난을 당하고 순교를 합니다.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종말시대에는 배도하는 일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고발합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종말시대에는 복음을 전 세계적으로 증거합니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주님의 <내 형제>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주림과 목마름과 나그네와 벗음과 병듦과 옥에 갇힌 자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배경에서 이해하는게 바람직하며,  이들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배척당하고 고난받는 자들이며, 또는 기근과 지진, 질병,전쟁 등의 환경적 재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이고, 또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아무런 이유없이 공동체에서 미움을 당하며, 배척당하고,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 자들입니다.
 
히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3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오는 어려움을 당하는 믿음의 형제들이며 이웃들이고, 항상 대접하고 돌봐 주어야 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렇게  임금(주님)은  < 내 형제>라고 칭하는 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표출합니다.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니라 
 
  
그럼 그 <내 형제>의 정체는 누구일까?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내 형제====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따라서 임금-주님-이 말한 <내 형제>를 정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주림과 목마름과 나그네와 벗음과 병듦과 옥에 갇힌 자
학대받는 자 뜻하며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진다.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은 마10장에서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닥칠 배척과 고난을 예견하셨고, 복음을 전하며 고난받는 제자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한 경우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그들을 보낸 주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제자들은 [지금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열매맺는 백성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목적을 실현하시오] 라는 메세지를 전합니다(예수님 믿으면 죽어서 내세-천당갑니다 가 아니라....믿으면 죽어서 내세-천당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주님의 천국복음인 천국-하나님나라-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변질시킨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외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 10: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마 10: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부모, 형제, 가족, 친지들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지만 복음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복음 전하는 자들을 선지자로 생각하고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의인이라 생각하고 영접하는 자들은 의인의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이기에 주님은 소자(작은 자)라고 말씀하시며, 이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미스도스, 품삯, 임금, 보상) 받을 것이요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을(미스도스, 품삯, 임금, 보상)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약


소자=복음을 전하며 고난을 받는 자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그들을 파송한 주님을 영접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주님은 본문에서 왜곡되고 편협한 인간관계를 경고하십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지극히 작은 자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교회와 교인에게 경고하십니다.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6 저희는 (아이오니오스,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세세의) ( 콜라시스, 형벌, 징벌) 에, 의인들은 (아이오니오스,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세세의) (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 구원과 영광의 생명) 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그럼 임금-주님-이 말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일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권력추구를 합니다.   이러한 권력추구는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사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인데,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하며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양상에서 주님의 제자들도 빗껴가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더러운 투쟁을 하는데, 하물며 세상의 영역에서는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겠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누가 더 높은지 서로 서열을 매기고, 서로 비교하면서, 주님께 가장 어리석고 부끄러운 질문을 합니다.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합니다.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주님의 관점에서 어린아이의 정의는 교회에서 통상적으로 가르치는, 힘이 없고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어서 천국에서 크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심플하면서 직설적인 설명입니까?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높아지려고 하고, 목사들은 교단정치에서 큰 교회를 앞세워서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하는 모습들이 제자들과 같지 않습니까?     
 


요약: 어린아이란 작은 자이며 자기를 낮추어서 천국에서 크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  어린아이-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천국의 가치는 <어린아이> 처럼 자기를 낮추는 것이며, 자기를 높이는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은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
 
누가 높은지 권력투쟁을 하면, 서로 높아지기 위해 다툼을 벌이면,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실족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고, 힘이 있고, 돈이 있고, 높은 사람이 인정을 받는 다면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실족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를 낮추는 작은 자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그들은 실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교만한 이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거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허영과 탐욕의 가면을 쓰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가차없이 쓴소리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마 18: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주님은 이들에게 지옥의 경고를 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내세-천당간다고 믿는 탐욕스럽고 거만한 자들에게 주님은   <과연 네 생각데로 그럴까?>  하고 저주의 메세지를 남깁니다.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여기서 손과 발이 하는 범죄는 <어린아이>와 <작은 자>를 업신여기어서 실족하게 만드는 죄이며, <작은 자>를 경멸히 여기는 죄를 말합니다.    이렇게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들은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경멸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께 직고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화가 있도다!!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네 손이나 네 발-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네 눈-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따라서 지극히 작은 자는
임금-주님-이 말한 <내 형제>이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 
주림과 목마름과 나그네와 벗음과 병듦과 옥에 갇힌 자 
학대받는 자
자기를 낮추어 천국에서 크다 인정을 받는 자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영벌과 영생이 결정된다.








열매맺는 삶, 자비와 긍휼은 상을 얻는 조건이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신앙생활에 열심은 있으나 긍휼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성향을 가진 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정의)와 인(긍휼)과 신(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들입니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긍휼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해서 앞만 보고 달리면서 자기의 성과와 업적을 많이 쌓는다고 자부하면서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의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처지를 살피고, 동정하고 함께 아파하고, 돕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아보고 대접하는데 있어서, 만약 자기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피해가 오고 손해가 오면 즉시 외면해 버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사회적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지극히 작은 자를 대하는데 있어서 자기에게 실익이 되는지,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손상시키는지, 자기의 체면을 구기는지, 자기의 홍보에 유익한지 아닌지 먼저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되면 지극히 작은 자들을 거부하고 외면합니다. 
 
염소로 평가받는 자들은 주님이 제사보다, 헌금보다, 봉사보다 인애와 긍휼을 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호 6:6 나는 인애(자비,긍휼)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때 사회적 지위가 어떤지, 재산은 얼마나 많은지, 교육은 얼마나 많이 유명한 학교에서 받았는지, 학위가 있는지, 집안 내력이 좋은지 등으로 나보다 위의 클래스 인지, 아니면 나보다 아래의 클래스 인지 평가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위의 클래스 사람들에게는 부러움과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나보다 아래의 클래스의 사람들에게는 차별과 무시로 자기의 존재감을 높이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유유상종한다는 말은 교회 안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작은 자들은 교회 안에서 여러모로 차별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믿는 자들 안에서(교회) 이러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경고하십니다.
 


그렇게 때문에 주님은 교회 안에서 왜곡된 관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에게는 종말에 오실 때에 염소라는 왜곡된 관점으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사회적 지위와 가진 재산과 가진 학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에게 종말에 오실 때에 염소라는 신분으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자에게 종말에 오실 때에 염소로 구분하여 영벌과 심판으로 차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담하고 경멸히 여기는 자에게 종말에 오실 때에 염소로 대우하여 냉담하고 경멸히 여김으로 일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고 대접하며 고통을 함께 하고자 하는 자에게 종말에 오실 때에 양으로 대접하시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해 주실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이 없는 자에 대한 심판
 
양은 주님의 형제의 고난에 동참한자이고, 본문에 나오는 주림과 목마름과 나그네와 벗음과 병듦과 옥에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영접하는 것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한다는 의미보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어려움에 처한 주의 제자들이 당하는 고통은 주님이 당하는 고통이며, 이러한 고통 당하는 제자들을 돌아보고 영접하는 것은 주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염소로 평가받은 자들은 자기가 왜 그렇게 인정받아야 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왜 염소로 평가받는지 억울해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했는데 왜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따지고 싶어합니다.   


<내가 언제 주님을 공양치 않았읍니까?    주님! 왜 자꾸 트집을 잡을려고 하세요?   주님! 왜 자꾸 시비를 거세요?  도대체 뭐가 불만이신데요?  내가 교회에서 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세요?  나 만큼 열심인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마 25: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왼편에 있는 염소로 분리되는 심판입니다.   이들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 갑니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종말에 주님이 오실 때에 각자 자신에 대한 평가는 각자가 예상한 것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아마 나 정도는 큰 상급을 받을 거야.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생각했던 자들이 완전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고 <나는 너무 부족해.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는데>라고 생각했던 자들이 주님의 칭찬과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평가 기준과 인간의 평가 기준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상급의 내용은 칭찬과 예비된 나라(바실레이아, 왕국,KINGDOM)를 상속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율로게오, 칭찬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바실레이아, 왕국,KINGDOM) 를 상속받으라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양은 그렇게 많은 일과 업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복을 받을 자로 인정되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여기서 복의 율로게오는  '~에 대해 좋게 말하다', 즉 '훌륭하게 말하다'나 어떤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다', 또는 칭찬하다 라는 의미인데,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주님께 칭찬받고 인정받는 복입니다.  


주님 오실 때 백평, 이백평 짜리 고급 아파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 거리고 살 것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물질적인 축복관에 사로잡힌 현대의 교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크게 수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복을 받은 양에게  나라를(바실레이아, 왕국,KINGDOM) 상속합니다.  양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의 백성이 되는 그 자체에 있습니다.  이렇게 주의 나라에 입성한다는 점에서는 차등이 없는 균등한 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렇게 열심히 많은 일을 해서 당연히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염소는 도리어 저주를 받고 [나를 떠나라] 라는 명령과 함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영영한 불은 구약의 [게헨나] 이며 [지옥불, 불못] 과 같은 뜻입니다. 
 


 
결론


오늘날 교회 안에 팽배한 잘못된 상급론은 다시 정정되고 바르게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진실로 원하는 무엇인지 본질을 놓친체 자기 열심, 자기 의, 자기 자랑에 빠져 큰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가 염소처럼 낭패를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성경에 기록된 천국과 상급의 실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체 입신해서 천국갔다 왔다는 자들의 간증을 듣고 거짓된 천국관과 상급론을 가지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천국 간증은 복음의 방해가 되고 사이비 교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간증을 믿기 전에 성경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바르게 이해하고 믿어야 한다. 


이신칭의를 잘못 생각하는 자들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행위구원>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카톨릭과 종교다원주의 자들은 선행구원론을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신칭의로 시작되고 자비와 긍휼의 삶을 통해 완성된다.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며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칭찬을 받고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며,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저주를 받고 영영한 불에 들어가는 영벌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