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성경] Hebrews c12 v6-11 / 히브리서 12장 6-11절

GODblessus 2023. 6. 7. 19:23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because the Lord disciplines those he loves,
and he punishes everyone he accepts as a son.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Endure hardship as discipline; God is treating you as sons.
For what son is not disciplined by his father?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If you are not disciplined (and everyone undergoes discipline),
then you are illegitimate children and not true sons.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Moreover, we have all had human fathers who disciplined us
and we respected them for it. How much more should we submit
to the Father of our spirits and live!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Our fathers disciplined us for a little while as they thought best;
but God disciplines us for our good, that we may share in his holiness.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No discipline seems pleasant at the time, but painful.
Later on, however, it produces a harvest of righteousness
and peace for those who have been trained by it.

 
히브리서 12장 6-11절
Hebrews c12 v6-11



θ와 나의 관계는...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로 생각할때 가장 납득이 간다.



θ께서 나를 훈련시키는 이유는 내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내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그냥 방치해 두실 것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인 것이다.


징계라는 말은 다시말하면 "자식만들기"로 생각하면 되겠다.
자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완성된 형태로 순간 뚝딱 만들어
완성품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낳은 자식을
그 완성된 모습에 이르기까지 길러내는 것이다.



부모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사생아임에 틀림없다.


부모가 낳은 자식을 기르지 않는 법이 없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기른다는 것은 밥을 먹여 키운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속과 내용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다.


내가 θ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θ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θ의 자녀다워지고
결국 그 자녀다움의 완성을 위하여
지금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간섭을 받으며...
인도함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신앙이 좋으면
내가 예배를 열심히 드리면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내가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리면

내가 죽도록 금식을 하면
내가 완전 열심히 새벽기도를 나가면
나에게 어떤 세상적인 보상이 있는가?
절대 없다.



애시당초 θ는 세상적인 보상따위 손톱만큼도 생각조차 안하신다.
우리가 볼때 세상적인 보상을 받았다고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보았을 때 그렇게 보일 뿐이지
θ께서 그 사람이 뭔가 칭찬받을만한 일을 해서 보상을 하신게 아니다.
보상이란 없다. θ의 계획만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을 그렇게 쓰기위한 계획을 세우신 것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내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등등을 해야하는가?
무엇때문에 내가 그래야 하는가?


내가 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θ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가 오직 그 이유가 되어야한다.
내가 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θ께서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나에게 요구하신 것이기 때문에...가 오직 그 이유가 되어야한다.


이것외에 다른 목적으로 위에 열거한 일련의 종교행위들을 행한다면
그것은 말그대로 종교행위일뿐이다.
θ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을 위한 "종교"적행위일 뿐이다.


θ께서는 끝까지 나에게 순교를 요구하신다.
죽도록 희생을 요구하시고 목숨을 버리는 충성을 요구하신다.



내가 아무리 θ앞에 눈물로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고
또 내가 세상적인 무엇인가를 이루기에 가장 쓸모있을 순간이라도

θ는 절대 나의 환경과 조건을 개선시켜주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하루아침에 확 변해 슈퍼맨이 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바울이 그토록 기도했건만 그의 간질병조차 고쳐주지 않으셨던 분이다.
아니 오히려 "내 은혜가 이미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신 분이다.


우리가 약할때 당신의 모습을 우리를 통해 가장 크게 드러내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몸이 건강해서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그 일을 해냈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시다.


왜 θ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실까?
왜 그럴까?


내가 커야되기 때문에 그렇다.
정답을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풀 수 있는 실력이 생겨야 한다.



θ께서는 나의 신앙이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라나
내가 체득하도록 하시지 절대 정답을 내 손에 쥐어주고
문제가 닥치면 바로 답을 찍는 방법을 일러주시지 않는다.



..이것이 나...아니 나뿐만 아니라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가장 큰 시험거리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비교해서
너무나 발전이 없는 나의 신앙의 현실과 실력들에 대한
안타까움, 슬픔, 절망, 도망치고 싶음..등등..
..이야말로 θ께서 나를 놓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실패했다고? 과연 실패했을까?
이는 성공을 어떤 신앙적인 승리로 연결시키기 때문에
늘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θ께서 나를 인도하시면서 허락하시는 승리는
겸손하고 은혜를 구하며 더 많이 θ께 의지하는 것이다.



"승리 = 겸손하고 은혜를 구하며 더 많이 θ께 의지하는 것"


내가 간구하면 간구할수록 θ께서는 더욱 나로하여금 θ를 의지하게 만드신다.
이것이 θ가 정의하시는 "승리"이다.



나의 그 수많은 실패들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가 나로 하여금 더 많이 θ의 필요를 갈급하게 만든다.

θ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뼈져리게 깨닫는 것이다.
이는 곧 θ께 더 매달리게 만드며 θ를 더욱 필요로하게 만든다.



하루하루의 힘듦이, 어려움이, 내 뜻대로 안됨이
결국은 θ께서 내안에 가장 중요한 것을 만들어 채우며
나를 키우는 θ의 간섭임을 확인하고
즐거워해야한다.



물론 이 "즐거움"은 지독히 어렵다.
무지무지 어려우며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다.



하지만 θ께서 그렇게 나를 완성하시기로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내가 그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믿고
주어지는 길을 묵묵히 완주해 내는 것.



그것이 크리스찬의 삶이다.


크리스찬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의미는
이것외에 다른 건 없다.


 




基天



<이미지출처 : 홀리넷(holybible.or.kr)의 다역본 홀리바이블 어플 스크린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