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견의 역사는 오래 전 인류 문명의
출현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들은 전장에 직접 참가하는 전투견으로 훈련되었으며 한편으론 군(軍)과 관련하여 정찰,보초,추적견으로서의 업무에 적합하도록 훈련되었으며 그 영역은 오늘날까지 군의 목적하에 다양하게 확장 발전되어 왔다. 워독으로서의 군견은 이집트,그리스,페르시안,사르마티아,바간다, 알란,슬라브,브리톤 그리고 로마인들에 의해서 이용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군견은 때로는 전투에 투입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보초나 순찰견으로 이용되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최초 군견의 출현은 BC600년경 리디아(오늘날 터키)국의 Alyattes왕이 킴메르족과의 전쟁에서 리디아의 군견은 침입자들과 패잔병들을 사지로 몰아 널었다. 후기 고대 훈족의 아틸라왕은 몰로셔종을 군견으로 전쟁에 참가시켰다. 중세에는 유럽 왕족들 간에 군견으로 이용되었던 강아지들이 선물의 증표로 교환되기도 했으며 다른 문명사회에서는 갑옷을 입힌 군견들을 도적을 방어하고 그들의 적을 공략하는데 이용하였다. 극동지역에서는 베트남의 태조인 레 러이왕이 100마리의 사냥견를 키웠고 이 강아지들은 군견 사육에 전문가였던 응우옌씨에 의해 길들여지고 훈련되었으며 이런 공로로 기습부대의 사령관으로 승진하였다. 훗날 프러시아의 프레드릭 황제는 러시아와의 7년간의 전쟁에 군견을 연락견으로 이용하였으며 나폴레온 또한 그의 전쟁애서 군견들을 참여시켰다. 1770년까지 프랑스에서는 군견들을 해군시설물의 경계를 위한 경계견으로 이용하였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이용한 것은 ※세미놀전쟁( Seminole Wars). 19세기에 미국 플로리다에 살던 세미놀 인디언과 미국과 플로리다 정부 사이에 벌어진 세 차례의 전쟁. 전쟁이 끝난 뒤 세미놀 인디언의 대부분은 인디언보호구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일부는 가족 단위로 흩어져 살게 되면서 정부에 대항하지 않았다. 하운드종이 남북전쟁에서는 죄수들을 감시하고 전령으로 활약했으며 북군을 사냥하도록 훈련된 많은 수의 전투견인 블러드하운드들이 북부연합군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사실이 그랜트 장군의 회고담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2차대전중에는 군부대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군견들이 선정되고 홍보와 징집을 위한 포스터에서도 군견의 활약이 왕성하였다. 군견의 역할 군견은 여러 영역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강아지종에 따라서 역할 또한 달라지지만 반드시 핸들러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군견으로서 수행했던 많은 역할들이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고 실전에서 이용되지 않는다 해도 군견으로서의 개념은 오늘날 현대전에서도 살아 있고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투 공격견 아주 오래 전에는 군견이라 하면 매스티프나 몰로셔 타입의 종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갑옷을 두르고 쇠침이 있는 목 칼라를 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방법은 로마,그리스 등 당시 많은 나라에서 이용하였다. 현대전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이같은 공격견의 역할을 군견에게 부여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SOCOM(special operations command)에서는 도망치는 적이나 죄수들의 체포를 위한 급습에 그리고 어렵거나 위험한 지역에서 병사들을 찾아야 할때 군견을 투입시킨다. 전투견 에피소드 2차세계대전 중 대형견을 침투시켜 일본군을 죽이자는 예사롭지 못한 발상의 작전이 싼타페에 거주하는 스위스인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윌리암 에이 프레스트레는 마침내 미시시피의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훈련시설을 마련하도록 군 당국을 설득하고 이곳에서 이백만마리의 공격견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 작전은 상륙용전차로 섬에 침입하여 수천마리의 공격견을 일본군을 향해 풀어 놓고 그뒤를 군부대가 따라 진입하면 일본군들이 혼비백산하여 쉽게 물러난다는 것. 그런데 예상치 못한 큰문제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는 공격견들을 훈련하기 위한 일본군 포로가 엄청 적다는 것. 이때까지 미군에게 잡힌 일본군 포로의 수가 매우 적었다 결국 일본계 미군의 자발적 지원으로 이 작전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되었다. 작전에 투입된 강아지들이 대체로 온순하였고 해변을 가로지르는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게다가 포격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수백만 달러가 소모된 뒤에야 잘못된 작전으로 판가름 나고 작전은 폐지되었다. 대(對) 탱크 전투견 에피소드 1900년대에 소련에서는 대 탱크 목적으로 군견을 이용하고자 했다. 대 탱크 군견은 지뢰를 짊어지고 적의 탱크 밑으로 들어가도록 훈련 받았다. 그런데 이 군견들은 서 있는 소련제 탱크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달리는 탱크 밑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탱크 옆에서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독일탱크와 소련탱크가 동시에 나타나면 너무나 친숙한 소련탱크로 달려가 폭발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역사적 해프닝. 수송과 전령견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즈음에 많은 유럽 지역에서는 수레견을 이용하여 우유배달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짐을 운반하기도 하였다. 몇몇의 유럽 국가의 군대에서는 운반 수송의 목적으로 군견을 이용하고 있었다. 1914년 8월 벨기에 군은 군견을 이용하여 그들의 저명한 맥심건(Maxim Gun) 수레를 끌도록 하였고 보급품과 부상병사의 이송 또한 군견의 몫이었다. 두마리의 온순하고 강인한 체력의 마틴 벨기에 종 군견들이 대포와 탄약 수레를 끄는데 이용되었다. 이전부터 민간에서는 말 소에 비해 구입 비용이 적고 사료 비용마저 적은 강아지를 수레견으로 널리 이용해왔으며 군에서도 전장에서는 강인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강아지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군대 내의 수송 운반 수단이 마차와 자동차로 완전히 교체되면서 1916년 12월 마침내 공식적인 군견으로서의 수레견 역할은 끝났다. 프랑스에는 1차세계대전 초기에 250마리의 군견이 있었다. 1차대전 당시 중립국으로 있던 네덜란드 군은 대전 말기에는 군견에 대한 인식을 도입하고 수백마리의 군견을 양성하고 있었으며 소련군은 2차대전 당시에 군견으로 하여금 야전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운반하게 하였으며 이들 군수레견들은 눈길이나 웅덩이가 있는 길에서 아주 유효한 운송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전쟁터에서 군견들은 전령 임무를 수행하였다. 전령견은 그의 2번째 핸들러에게 통지문을 전달한다. 이 임무에 종사하는 전령견은 2명의 핸들러에게 충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전령견으로서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다. 전령견은 이외에 통신 케이블을 물고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연결시키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스모키(Smoky)라는 유명한 요크셔테리어는 1.18kg 아주 작은 강아지. 4-8inch의 통신망을 통과하여 21m의 적의 사정거리 안에서 병사들의 이동없이 전령 역할을 수행하여 전투에서 승리하는 공로를 세웠다. 마스코트견 강아지는 군부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마스코트 강아지는 부대원이 키우는 강아지, 부대원들이 입양한 강아지, 군견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아지 중에서 선정된다. 해병대 마스코트인 신바드와 주디(Sinbad & Judy)는 그들 자체로 해군의 신분이며 어떤 부대에서는 부대원들이 정한 기준에 의해 특별한 강아지를 고르기도 하고 기존의 마스코트가 은퇴하거나 별이 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강아지를 대신하기도 한다, 마스코트의 존재는 부대원의 사기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1차세계대전 중 참호전에서 그 효과가 증명되었으며 이런한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서전 스투비(Sgt. Stubby)이다. 의료실험용 군견 2차세계대전 중에 군견들에게 새로이 부여된 임무 중 하나는 실험 의학을 위한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이 실험 의학은 의사들에게 개발된 신약을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동물을 대상으로 그 위험 여부를 판단 하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전쟁 후에는 더욱 엄격한 관리하에서 실시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 실험에 희생된 모든 군견들에게 영웅의 자격을 부여하기도 했지만 냉전시대 미국내에서는 이 동물을 이용한 의학 실험에 대하여 비윤리적이고 휴머니즘에 반하는 행위라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특히 2차대전 중에 있었던 군견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비난의 목소리가 커져갔다.1996년 마침내 실험실 동물의 복지법 Laboratory Animal Welfare Act이 만들어졌다. 탐지 추적견 많은 군견들이 지뢰 탐지에 이용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실제 전투중에 이 탐지견들이 지뢰를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다. 해병대 지뢰탐지견의 훈련은 땅 속에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묻고 그 위를 걷도록 한다 .전기 충격을 받은 탐지견은 흙속에 위험한 물건이 있다는 기억을 하게 된다 일단 탐지견이 위험하다는 의식을 갖게 되면 모의지뢰를 심어 놓고 지뢰를 발견하면 신호를 보내는 훈련을 하게 된다. 탐지견을 이용하여 지뢰를 찾는 작전은 효과적이지만 탐지견에게는 엄청 힘들고 많은 스트레스를 주기에 1회 투입시간은 20-30분으로 제한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즐거움과 행복한 기억으로 뛰놀던 땅에서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한 기대는 탐지견들을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몰아 이들의 수명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이런 실례는 실헙실 쥐에게서 더욱 잘 나타난다. 전기 충격을 경험한 쥐가 이를 피하기 위해 공포에 떨며 구석에 웅크리고 굶어 죽어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군견은 도망병과 적군을 추적하고 한편으로는 정찰견의 업무까지 담당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어 왔다. 정찰견 군견 중에는 스나이퍼처럼 숨어 있는 적을 찾아내거나 부비트랩과 같은 숨겨진 폭발물을 찾아내는 훈련을 받는 강아지가 있다. 이 군견들은 사람에 비하여 엄청 발달한 예민한 후각과 청각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위험요소를 발견해낸다. 최고의 정찰견은 온순한 추적견과 과감한 공격견 둘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정찰견은 대략 900m 거리안에서 적의 위협을 구분할 수 있다. 정찰견은 2차세계대전,6.25전쟁,베트남 전에 참가했다 전쟁에서 매복,비밀 무기저장고,물위로 빨대를 내밀고 물속에 은신하고 있는 적군을 발견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보초견 군견으로서 이용된 최초의 임무는 보초견이었으며 이들은 주로 야간에 때로는 주간에도 군부대나 주요시설를 지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짖거나 으르렁거려 경비병에게 경계신호를 보낸다. 냉전시대 미군 보초견은 핵무기 저장 시설의 외곽을 경비하였다. 베트남에서 보초견에 대한 실험적 조사가 시행되었다. 40개의 팀이 4개월간 기관총 진지와 벙커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베트콩들의 침입을 사전 감지하고 대항군을 신속하게 배치 전개하게 되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남에 따라 보초견들의 핸들러들은 미국으로 귀환하였지만 정작 보초견들은 베트남에 남겨져 새로운 핸들러에게 넘겨지고 보초견으로서의 임무를 계속하였다. 미 공군은 즉각적으로 보초견들을 베트남과 태국의 모든 군사기지로 배치시켰다. 467마리의 보초견이 베트남의 주요 미군기지에 배치되었고 1년이 되지 않아 여러 차례 베트콩의 습격을 받았지만 조기에 이를 감지한 보초견팀의 역할로 별 다른 손실을 입지 않았다. 베트콩 포로에 의하면 그들은 보초견을 두려워하며 경이롭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며 보초견과 핸들러에게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보초견으로 말미암아 베트남과 태국의 미군기지는 더욱 안전함을 보장 받았으며 이 군견들이 1만명 이상의 미군 생명을 구해냈다고 미국내 군견 관련 단체는 평가하고 있다. 현대전에서의 군견 역할 현시대에서 군견으로서의 역할은 종종 경찰견과 같이 통용된다. 군견 (Military Working Dog),K-9으로 불리운다. 오늘날 군견은 오래전의 군견에 비해 다른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최전선에 배치되는 경우는 더욱 줄어들었다. 2011년 600마리의 군견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투입되었다 전통적으로 경찰업무에 가장 적합한 견종은 저먼 세퍼드종이다.(저먼세퍼드 소개) 최근에는 감지활동에 최적인 예민한 후각을 지닌 작은 종류의 강아지종과 상황 회복이 빠른 강아지종 예를 들면 벨기에 말리노이즈와 순찰과 법 집행을 위한 더치세퍼드 등으로 바뀌고 있다. 모든 군견은 훈련 받은 후 한명의 핸들러와 짝을 이뤄 활동한다. 핸들러는 그의 활동중에 한 군견만을 담당하지 않는다. 보통 핸들러는 파트너 군견과 1년 정도 생활하지만 때로는 그 이상도 함께 하기도 한다. 최근의 군견들이 착용하는 전술조끼에는 카메라와 내구성 강한 마이크가 달려 있어 핸들러에게 소리와 생생한 화상 정보를 전달한다. 1970년대 미공군에서는 160마리의 군견을 전세계에서 이용하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는 감축에 의해 대략 530개의 팀이 운영되고 있다. 군견에 대한 법적 지위가 점차 향상되고 있다. 2000년 이전에는 나이 든 군견의 경우 안락사가 필연적이었지만 개정된 법에 의하여 은퇴한 노령군견을 입양할 수 있다. 이라크전에서 핸들러가 사망하여 홀로 남겨진 군견 렉스의 일화가 유명하다. 마약 폭발물 탐지견 탐지군견은 다른 일반 탐지견과 함께 약물 탐지에 종사하는데 넓은 영역애서 킁킁거리며 꼭꼭 숨겨 놓은 환각제를 찾아낸다 훈련 받은 탐지견은 종류에 상관없이 아무리 적은 냄새라도 심지어 밀봉한 컨테이너에 숨겨진 약품도 추적 찾아낸다. 탐지견은 통상 출발항, 공항이나 검색대 그리고 높은 보안이 요구되거나 밀수품 반입을 금지하는 여느 장소에서 활동한다. 탐지견은 폭발물에 대한 탐지 훈련도 받는다. 훈련 받은 탐지견은 마취제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소량의 폭발물을 탐지해내며 이는 출입구의 탐색과 보안 시설의 순찰, 검색대에서의 탐지역할에 효과적이다. 탐지견들의 폭발물 발견률은 98% 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군견의 은퇴 전통적으로 2차대전 중에도 전쟁이 끝나면 군견들은 모두 그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군견이 되기 전의 주인집이나 아님 새로이 입양한 가족의 품으로 귀향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전에서는 그 양상이 달랐다. 이 전쟁에서는 군견들은 소모품으로 취급되어 미군이 철수하기 전에 베트남군에게 양도되거나 안락사를 당하였다. 은퇴한 군견 핸들러들의 길고 험한 노력 덕분에 미 의회에서는 노령견으로 은퇴하는 군견을 입양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하게 되었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법안에 사인을 하고 그후부터 은퇴군견의 입양이 본격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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