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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업가에 대한 예수님의대답:내가 안시켰음

GODblessus 2022. 8. 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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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2.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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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도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야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마 23:16-22”)



오늘 예수께서는 맹세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인생들의 생각은 그 맹세를 하는 대상에 따라서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켜야 할 맹세는 지키지 않고 지킬 필요가 없는 맹세는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단어인 성전(3485naov" : 나오스) 으로 표시 되어 있어도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도 없거니와“ 할 때의 성전과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할 때의 성전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몸 성전이요 두 번째 성전은 돌로 지은 성전을 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예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하늘로나 땅으로 맹세를 한다면 스스로의 멍에를 지게 되지만, 예루살렘 성전으로 맹세한다면 그 큰 세상 임금으로부터 멍에를 쓸 것이기에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아무런 멍에도 씌우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인생들 스스로가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마치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마 25:14-30)과 같이 자기식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심지 않는데서 거두는 하나님, 분노의 하나님 등으로 생각할 뿐이다.

하나님은 이미 인생들이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맹세하고 스스로를 죄 속에 가두는 일이 없도록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 맹세를 지키지 않는 인생들을 정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스스로를 죄 속에 가두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알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큰 세상 임금의 성이라고 못 박은 대신에, 당신의 몸, 하나님의 성전이 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주의 전, 그 큰 임금의 성을 사모하는 열심 때문이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마 5:34-35) .



여디디야의 돌로 지은 성전에 있는 것은 법궤라 할지라도 금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여디디야의 돌로 지은 성전에 있는 금덩어리가 크냐? 그 금덩어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솔로몬의 성전이 크냐?



註 : 여디디야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위하여 하나님이 지은 이름이다.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삼하 12:24-25)



그렇지만 너희들은 오히려 지켜야할 필요도 없는 돌로 지은 '여디디야' 성전의 금덩어리에게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힘줄을 돋우는 소경이요 우맹이다 라는 것이다.

“그렇지 지금부터는 성전의 금덩어리로 맹세하지 말고 성전으로 맹세 해야지” 하는 사람 역시 소경이요 우맹일 따름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상을 뒤엎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시고 5분도 안되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성전을 왜 헐라고 하시는가?

예수의 이러한 행적은 이중적으로 보인다. 그 이중적으로 보이는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돌로 지은 성전을 크게 하기 위하여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고 그 정신은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 19:46, 마 21:13, 막 11:17 참조)



'봐라 예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 성전을 더럽히는 모든 자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돌로 지은 성전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뭇사람들이 오해하도록 하여 목사들이 필생의 사업으로 교회를 짓게 하고, 또 다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내게 하는 빌미를 주시는 것인가?

마음 성전(그리스도)보다 먼저 지은 돌로 된 성전(율법)은 다 절도요 강도이기 때문(요 10:8 참조)에 강도의 굴혈이 될 수밖에 없지만 구원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돌로 지은 성전을 통과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어렸을 때에는 그 돌로 지은 성전에서 제사법을 배우는 것이나 장성한 후에는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마음 성전에서 아버지께 예배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여디디야)의 돌로 지은 성전을 용납하셨지만 하나님은 돌로 지은 성전에 머물 수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의 마음 성전에 머물기를 원하고 계실 뿐인데, 눈에 보이는 돌로 지은 성전만 보이고 하늘에 있는 성전 즉 마음 성전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인 돌로 지은 성전만 크게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0-24)



눈에 보이는 돌로 지은 성전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성전 즉 마음 성전의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 때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자들이 강도이기 때문에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신 것이다. 돈 바꾸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 때문에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을 노끈으로 때리며 쫓아내신 이유는 너희가 이제는 돌로 지은 성전을 떠나 참 하나님의 성전에 머물라는 뜻이다.

성전을 빌미로 하여 먹고 살던 무리들을 향하여 썩어질 떡으로만 살지 말고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는 뜻인 것이다. 돌로 지은 성전에 머무는 한 우리의 양식은 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또 쉽게 풀어 주려고 사도 바울도 무단히 노력하였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 6:16)



그러나 오늘 날의 결과도 2,00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이 인생들의 한계이다. 교회(1577 ejkklhsiva : 에클레시아)는 성경이 설명하듯이, 불러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곳이다. 교회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교회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버지의 집을 깨달을 방법 또한 별무신통이기 때문이다.

즉 '여디디야'의 돌로 지은 성전에서 열심도 내보지 않은 사람이 이 글을 읽은 후, 그러면 그렇지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지레짐작할까 염려될 뿐이다. 

날 때부터 아는(生而知之)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인류역사상 600년 만에 한 분 나올까 말까 하단다. 그 분들이야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알겠지만 범인들이야 필히 돌로 지은 성전을 지나야만 아버지의 집을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홍해를 건너 광야 교회를 거치지지 않고도 법궤를 앞세우고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일 뿐,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는 것과 순례의 여정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할 곳이 여디디야의 돌로 지은 성전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돌로 지은 '여디디야'의 성전과 '그리스도'의 몸 성전이 각 사람의 일생 중, 같은 시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여디디아의 성전에서 열심을 내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의 성전을 깨달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성전을 깨달은 사람은 여디디야의 성전을 떠난다는 이유이다.

돌로 지은 여디디야의 성전에 있는 금으로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런 짐도 지기를 원하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전으로 맹세하고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여도 스스로 율법에 갇히지 않는 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맹세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맹세라 할지라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 욕심에서 비롯된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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