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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천국] 참 정리 잘했네요! 디세스님의 《중남미 마약 역사의 숨은 이야기 》 (2020/6/10)

GODblessus 2023. 9. 21. 16:02
[호기심 천국] 참 정리 잘했네요! 디세스님의 《중남미 마약 역사의 숨은 이야기 》 (2020/6/10)
 일신  2020. 6. 10. 1:35
천하일신 평

약간의 업데이트만 할려고 했는데 길어졌다. 한 나라가 이처럼 망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는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판돈이 결국은 문제다. 기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1500억달러의 마약시장을 옆에 두고 사는 이웃의 불행이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이 정도였으면 마약전쟁은 성공을 했을 것이다. 한해 마약유통업자로 들어오는 자금이 적게는 200억달러 최대 500억달러다. 이제는 군벌이 되어버린 마약 카르텔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공식적으로 마약전쟁 종결을 선언했다. 13년간(2006~2019)의 마약전쟁의 결과는 군벌이 되어버린 카르텔의 존재다. 또 하나는 멕시코 전국이 마약카르텔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이다. 미초아칸의 경우 정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성공의 비결은 처음부터 정부의 기초적인 역할에 충실하는 방법뿐이 없다.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해주고 미래에 희망을 준다면 당연히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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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마리화나 불법화
시날로아주 마리화나 재배지(멕시코 이동)
1977년 콘도르 작전
시날로아 카르텔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 이동
콜롬비아의 마리화나 재배지 공습작전
마리화나 코카인 변화
피노체트의 칠레 코카인 기술자 압박
콜롬비아 대거이동
1980~1990대 코카인 콜롬비아 카르텔 등장
 
 
 
코카 나무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나무의 잎을 코카라고 부른다. 안데스 산맥에 많이 심으며,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타이완에서 많이 재배한다.1532년 에스파냐 사람들이 페루 산골 마을에 들어갔을 때 주민들이 모두 이 잎을 씹고 있었다.하루 평균 30~50g의 잎을 석회 또는 불땐 재와 함께 씹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힘이 생기고 피로와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이 작용 때문인지 코카 나무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표가 되었으며 잉카의 신은 양손에 코카나무의 잎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잎에서 추출되는 알칼로이드인 코카인은 사람의 점막을 통하여 습수되어 지각,신경 말단에 작용함으로써 통증과 미각 등의 감각을 마비 시킨다. 따라서 1862년부터 수술이나 진찰을 할 때 국부마취제로 쓰기 시작하였다.그러나 많은 양을 흡수하거나 반복해서 사용하면 중독을 일크기는데 영양 장애와 함께 우울중,불안감,수면 장애,만성 피로, 정신 혼란 등의 정신 질환을 가져온다. 코카나무 속에는 약 100종의 식물이 있지만 몇몇 종만이 코카인을 얻기 위해서 재배한다. 안데스 산맥에서 재배되는 코카나무와 자바에서 재배되는 자바코카의 잎에는 코카인이 각각 1.2%, 2.3%가 들어있다.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
제도혁명당
약칭 PRI
창당일 1929년 3월 4일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좌파 ~ 중도
71년간 장기 집권한 정당
(1929년 ~ 2000년)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과 그 이후 10년간의 혼란 이후 베니토 후아레스의 정책과 이념을 계승하여 사회민주주의 개혁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제도혁명당(PRI)은 1929년에 창당된 이래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71년 동안 멕시코를 지배했다. 제도혁명당은 32개 연방 주의 다양한 계급과 계층, 이질적인 집단과 부분들까지 특유의 포섭과 통합기제로 통치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이끌었다.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했지만 헌법에 명시된 6년 단임이 철저히 지켜짐으로써 독재자가 출연하지 않았고,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나 제3 세계의 많은 국가들과 달리 문민정부가 군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기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본질적으로 전무했다.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멕시코는 1950년대 후반 이후 멕시코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68년 올림픽과 1970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다. 외형상으로 멕시코는 민주주의를 이루며 선진국에 진입할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제도혁명당의 권위주의적 일당독재에 의한 정치안정은 나라의 모든 분야에 부패가 만연되어 정경유착은 물론이고 공권력과 범죄조직의 경계마저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았다. 나라 전체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던 집권당과 정부는 정의 실현차원에서 조직범죄를 근절할 방법을 모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정한 방법으로 거래함으로써 범죄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했다. 이들은 범죄조직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 받았고, 제도혁명당을 반대하는 세력을 견제하고 탄압하는 용역으로 조직범죄단을 동원했다. 중앙과 지방의 정치 권력자들은 법 위에 군림했고, 마약조직을 비롯한 조직범죄단은 정치권과 정부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마리화나(1960~)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중반까지도 마약은 미국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미국이 마약을 본격적으로 금지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다. 1960년대가 되면서 미국에서 마리화나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국내에서 마약을 통한 지하경제의 성장을 막기 위해 각종 마약 생산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이에 따라 가장 수요가 많았고 적발되기 쉬운 마리화나 재배 및 생산 본거지가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은신처로 옮겨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기원마리화나( 인도대마 또는 미국대마)를 재배해서 미국에 밀매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시작되었다.
멕시코는 시날로아주가 미국의 최대 마리화나 공급지였으나 1980년대 초반까지 제도혁명당과 정부는 마약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와 마약카르텔 사이에는 네 가지 불문율이 잘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약카르텔은 첫째, 마리화나와 마약의 국내소비를 늘이지 않으며 둘째, 마약과 관련된 폭력으로 사회에 이슈를 만들지 않으며 셋째, 제도권의 정치집단에 도전하지 않으며 넷째, 연방정부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이다.

제도혁명당 정부는 마약조직 내부에 멕시코 연방보안국(DFS)과 연방사법경찰(PJF) 요원을 공공연히 상주시켜 연방정부의 결정을 수시로 전달했다.

1982년 8월 모라토리엄 선언

1980년대에 들어 제도혁명당 50년 장기집권의 부작용이 국내외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방만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단기 오일 달러를 대규모로 도입했으나 달러 금리인상과 유가급락이 겹쳐 1982년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멕시코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고, 제도혁명당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것까지 후아레스를 계승했다는 조롱을 세계로부터 들어야 했다.

1977년 ‘콘도르 작전’

미국은 DEA(마약단속국)를 내세워 멕시코 정부와 함께 1977년 ‘콘도르 작전’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마리화나 재배지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멕시코 측의 사전 정보 유출로 인해 값비싼 사회적 비용만 치렀을 뿐 목적 달성에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켜 콘도르작전 이후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들이 할리스코 주의 과달라하라로 거처를 이동하면서 마약카르텔의 영역이 확장되었고 마리화나 재배와 돈세탁의 범위도 넓어졌다.

미국은 동시에 군대를 동원해 대규모로 콜롬비아의 마리화나 재배지 공습작전도 펼쳤는데, 멕시코의 경우와 달리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이 콜롬비아에 군대까지 동원한 이유는 멕시코와 달리 마약재배를 공산주의 게릴라인 콜롬비아 반군(FARC)과 연결시켜 CIA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코카인
코카인 생산(칠레,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

미국의 공습은 콜롬비아 마리화나 생산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으나 결과적으로 콜롬비아 마약생산을 마리화나에서 코카인으로 전환시킨 변곡점이었다. 1970년대 중반 칠레에서 일어난 피노체트의 쿠데타 전까지 중남미에서 소규모로 유통되는 코카인의 대부분은 칠레의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생산되었다.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가 코카인 제조 기술자들을 마구 처형하자 살아남은 이들의 대부분이 콜롬비아로 피신했고, 미국의 마리화나 재배지 습격 이후 새롭게 출현한 조직들에 고용되었다. 이들 조직은 코카인을 바탕으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를 거치며 세계 최대의 마약범죄집단으로 진화하게 되며 멕시코의 마약산업 팽창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설명하면 코카인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코카나무 잎이 필요하기 때문에 코카인 생산은 안데스 국가들(칠레,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의 전유물이다.
멕시코 외채위기 후 제도혁명당의 독점적 정치권력에 균열이 생겼고, 미국은 멕시코에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DEA가 수행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협조하도록 강요했다. 이때 멕시코 정부는 DEA에 순순히 협력해 1984년 400여명의 군인을 헬기에 태워 치와와 주 사막 은밀한 곳에 위치하던 멕시코 최대의 마리화나 재배지를 불태웠다. 그 지역에서 모집된 수많은 가난한 농민들이 총에 맞거나 불에 타서 숨졌다. 당시 멕시코 정부가 DEA에게 협력한 이유 중 하나는 멕시코 마약 사업에서 마리화나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5
 
미국의 집중 단속으로 플로리다와 카리브의 섬을 통한 코카인 밀반입량이 한계에 다다르자 콜롬비아의 거대 마약 카르텔은 미국으로 코카인 반입 루트를 다양화하는 방편으로 멕시코의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고, 코카인은 마리화나에 비해 훨씬 큰 수익을 가져오고 있었다.
하지만 DEA의 공습에 의해 자신의 마리화나 재배지가 모두 불타버린 조직 우두머리는 분노에 치를 떨었고, 부하를 시켜 1985년에 해당 작전에 참가한 DEA 요원 ‘키키 카마레나(Kiki Camarena)’를 납치 고문하며 자신을 배신한 자의 정체를 추궁했다. 카마레나 요원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 사건은 당시까지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 단속 역사에서 가장 큰 후폭풍을 가져왔다. 미국은 카마레나 요원의 납치 살해에 대해 멕시코 전체에게 길고도 가혹한 행정보복과 경제보복을 가했다. 군대와 정보기관을 멕시코에 불법으로 파견해 카마레나 요원 납치와 관련되었을 것 같은 모두를 죽이거나 미국으로 납치해왔다. 미국은 카마레나 요원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의심받던 연방보안국(DFS) 요원까지 살해했고, 멕시코 대통령 미겔 데 라 마드리드를 압박하여 연방보안국을 해체시켰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마약조직 보스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은 끔찍이 아낀다.

DEA 등장

DEA는 FBI와 마찬가지로 미국 법무부 산하의 연방기관이다. 하지만 FBI나 CIA와 달리 당시에는 미국의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었다. 카마레나 요원의 죽음 이후 DEA는 FBI에 맞먹을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조직의 규모도 순식간에 커졌다. 멕시코와 남미 인들은 DEA를 ‘라 데아’라고 부르는데, 마약산업 종사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가 ‘라 데아’이다. 미국의 마약 정책은 미국 내부의 불법 마약 소비를 억제하고 단속하는 것보다 외국의 마약 생산지를 타격해서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에 초점을 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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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 marihuana 

인도대마 또는 미국대마에는 환각발현수분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수분질을 칸나비노이드라고 총칭하며, 칸나비놀, 칸나비디올, 칸나비놀산, Δ1-3,4-trans-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 등이 그것에 속한다. 대마를 건조한 것 또는, 식물에서 얻어지는 수지상 참출수분을 마리화나하스히스, 챠라스 등으로 부른다.

마리화나는 담배와 같이 흡연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사용법인데, 그것에 따라 다행감, 해방감, 졸음, 시간 · 공간감각의 상실, 환청, 환시 등의 정신작용과 동시에 심박수 증대, 혈압상승, 구갈(口渴) 등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마단속법에 의해 취급이 규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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