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도둑질한 것을 갚으라 - 십일조와 헌물

GODblessus 2023. 8. 21. 17:47

설교 창고 Sermon box

183 도둑질한 것을 갚으라 - 십일조와 헌물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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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83 도둑질한 것을 갚으라

본문 말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라기 3:8-9).

 

경에는 자수하여 광명을 찾은 한 인물이 있습니다.

이 자는 죄를 지었는데 자수를 하면서 동시에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자가 지은 죄는 도둑질이었습니다. 속여 빼앗은 죄입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을 보겠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삭개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 정부에 바치는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세리들이 임의로 세금을 거두어 일정액만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을 하는 일이 관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 세무 공무원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 것으로 보아 그는 마음에 어떤 갈급함이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마도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어 예수님을 만나 그러한 것에 대하여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들 중에서도 특별히 삭개오를 지명하여 그의 집을 방문하였고 삭개오가 결국 회개를 하게 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러한 추측이 틀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삭개오는 속여 빼앗은 것의 네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삭개오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아 삭개오는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훔친 짐승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면 두 배로 갚고 훔친 짐승을 이미 잡았거나 팔았으면 네 배 또는 다섯 배로 갚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출 22:1)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출 22:4)

삭개오는 이러한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삭개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돈 욕심으로 한동안 죄 중에 빠져서 세리의 일을 정직하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남으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신이 속여 빼앗은 것을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하여 돌려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것을 속여 빼앗습니다.

후진국은 경찰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람들의 것을 속여 뺏기도 하고 강제로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 도둑질이 아닙니다. 빌린 돈을 주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초과 근로 수당을 주지 않는 것, 세금을 정직하지 않게 내는 것 등이 모두 남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국가에 납부하도록 법으로 규정된 것을 납부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며 처벌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돈을 도둑질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 사이에 돈을 훔치면 벌을 받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법을 만들어 놓았고 삭개오는 그 법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것을 훔친 자도 벌하시지만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자도 벌하십니다. 사람의 것을 훔친 자가 받는 벌보다 하나님의 것을 훔친 자의 벌이 더 중할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수아 7장 24절 2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수 7:24-25)

아간이 감춘 재물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노획물 모두를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가족과 모든 소유가 돌에 맞고 불에 타는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가 매우 엄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사무엘상 2장 16절, 17절을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 2:16-17)

이 구절은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사 지내러 온 사람의 고기를 기름도 태우기 전에 빼앗아 가는 패역한 짓을 한 것입니다. 원래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기름을 태운 후에 그 고기를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것인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기름채 구운 더 맛있는 고기를 먹으려고 제물을 가져온 사람의 고기를 강제로 빼앗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릴 기름을 훔친 것입니다.

또한 제사 지낸 고기도 정해진 이상으로 가져다 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성물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에게도 주고 자신들도 먹은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몸이 비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 아들이 가져다주는 기름을 떼지 않은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고 살이 쪘으면 성경이 그를 비둔한 자라고 하였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의 집안에 저주가 임할 것과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장 31절에서 34절까지를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삼상 2:31-34)

다른 모든 사람은 복을 받더라도 홉니와 비느하스의 집안에는 환난이 있을 것이고 후손들이 모두 젊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가 이렇게 엄중한 것입니다. 이 저주가 응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4장 11절과 18절에서 20절까지를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 4:11)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삼상 4:18-20)

아버지와 두 아들과 며느리가 한 날에 모두 죽었습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궤도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한 패역한 자의 말로가 참으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헌물을 도둑질을 한 아간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와 벌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친 죄를 지은 이들은 사형에 처해지는 벌을 받았습니다. 가문에 저주가 임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것을 훔친 죄는 몇 배로 변상하는 벌을 받으면 됩니다. 감옥에 가지도 않고 죽임 당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는 사람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의 크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것입니다.

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십일조와 봉헌물을 온전하게 바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장 8절, 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8-9)

이 구절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많은 믿는 자들이 이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약간의 헌금은 하지만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여 저주를 받은 예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 혹시 십일조를 전혀 하지 않고 있거나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하지 않고 그보다 적은 금액을 하는 분들은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르게 드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마십시오.

그리고 현재는 십일조를 하고 있지만 과거에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금액을 대략 추산하여 소급하여 모두 십일조를 하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아 십일조를 하지 않았든지, 예수는 믿었지만 믿음이 약하여 하지 않았든지 상관없습니다. 모두 소급하여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믿음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삶에 적용하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거나 사업을 하여 돈을 벌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십일조를 내지 않은 기간의 총 수입을 산정을 하십시오. 정확한 금액은 아닐지라도 대략적인 추산은 가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년간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는데 그 기간의 수입이 2억 원 정도 된다고 하면 그 금액의 십분의 일인 2천만 원을 십일조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만한 돈이 있으면 한 번에 드리고 형편이 안되면 시간을 가지고 갚아 나가면 됩니다. 예를 들어 현재 5백만 원의 재산이 있으면 그것을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서 매월 일정 금액을 드리며 갚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은행 융자는 사람에게 빌린 돈이지만 얼마나 성실하게 갚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을 갚는 데는 더욱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수입이 적어 매달 얼마씩 십일조를 갚기 힘들다면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십일조를 도둑질한 금액이 5천만 원이나 됩니다. 제가 지금 1억 원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고 은행 융자 6천만 원을 갚고 월세 보증금 3천만 원을 제하면 천만 원이 남습니다. 천만 원을 지금 드리면 과거 십일조 드리지 않은 5천만 원을 모두 갚은 것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오면 그렇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물을 훔친 자라는 올무에서 속히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십일조와 헌금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중간에 중단하면 전에 할인해 준 것 하나님이 도로 물릴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계산이 정확한 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밀린 십일조를 한 번에 갚을 만큼 재산이 있음에도 한 번에 갚지 않거나 깎아 달라고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도둑질의 연장선상에 계속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밀린 빚은 갚지 않고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오히려 그 돈을 받지 못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돈을 빌린 사람은 부자로 살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회에서 지탄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밀린 십일조를 갚을 수 있음에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갚지 않는 사람은 십일조의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십일조와 관련하여 마음에 찔림이 있다면 회개하고 지금 예를 든 것처럼 재산을 팔아서라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금부터는 십일조를 어디를 통해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이 합당한 지에 대하여 나누어 보겠습니다.

보통 십일조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구약의 때에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돌리고 레위인들은 기업을 갖지 않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이 법을 현대에 적용하면 십일조는 목회자나 교회 안에서 풀타임으로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생활비를 지급을 하는 용도로 사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관리 유지하는 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교회의 운영과 관련된 직접 경비를 십일조로 충당을 하면 적절한 것입니다.

즉 십일조를 교회를 통하여 드리면 성경적으로 합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통로를 이용하여 십일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가난한 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연고자가 없는 재소자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에게 십일조와 헌금에 해당하는 돈을 주어도 되는 성경적인 근거는 마태복음 25장 35절에서 40절까지의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36-40)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말씀은 주리고 목마른 자나 헐벗은 자, 병든 자나 옥에 갇힌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고넬료의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구제하는 돈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겠습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그러므로 이렇게 궁핍하고 고난에 처한 자들을 돕고 구제하는 데 돈을 사용하면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 교회를 찾지 못하여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십일조와 헌금을 할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들은 십일조와 헌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제하는데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헌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건물에 돈을 많이 들이거나 목회자들의 사례비와 활동비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교회는 비록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일지라도 십일조와 헌금을 그곳에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도 그곳에 십일조 드리는 것보다 직접 구제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거짓 목사에게는 헌금을 할수록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바알의 제사장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것이니 하나님께서 오히려 진노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돈도 잃고 복도 잃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참 교회를 알아내어 그곳에 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교회를 직접 섬기지는 않더라도 참 주의 종을 통하여 십일조와 헌물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을 드릴 곳을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가난한 자이든, 구제 기관이든, 참 교회이든 성령께서 인도를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재물을 헛된 곳에 드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하는 것은 성물을 도둑질 한 죄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어느 곳에 할지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십일조와 관련하여 잘못 이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이 구절은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것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큰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큰 복을 주신다는 것을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는다"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목사들이 이 구절을 돈을 많이 쌓게 해준다는 의미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해석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복과 돈을 항상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기복 신앙이고 번영 복음입니다. 먹고 입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들어오는 것은 큰 복임에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삼분의 일이 이러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돈이 들어오는 것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로 복과 화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재물이 들어오는 자체를 복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말라기 3장 10절의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지는 복은 굶지 않는 복과 영적인 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영혼이 구원받는 복인 것입니다. 돈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어떤 교인이 목사가 십일조를 하면 수입이 더 늘어난다고 말하여 일 년 넘게 십일조를 하였는데 오히려 수입이 줄고 형편이 더 어려워져 십일조 드리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을 잘못 해석한 목사의 피해자 중의 하나입니다. 이 목사는 성경을 잘못 풀어 교인을 실족하게 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동일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법이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십일조에 따르는 상급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도 사업이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자는 어찌 됐던 복을 크게 받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니 그 복이 눈에 안 보이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고 중단하지 마십시오. 꼭 지켜 행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되 밀린 것까지 다 드려서 큰 복, 온 집안이 구원받게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말씀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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