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악몽속지옥의악마들/기독교핍박,박해

동북아의기독교핍박

GODblessus 2022. 7. 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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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려 했던 가쿠레 기리시탄 (隠れキリシタン)

1549년 일본에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상륙한 이후, 일본열도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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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9년 일본에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상륙한 이후, 일본열도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하비에르의 일기에 의하면 '세례성사를 집전하느라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라는 기록도 등장하는데, 특히 큐슈의 다이묘들중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등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이묘들도 나타나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영지내의 주민들이 모두 그리스도교로 개종해서 큐슈에는 상당수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습니다. 임란당시에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따라 종군한 에스파냐 신부 세스뻬데스가 경남 진해에서 1년간 머물렀는데, 이시기와 임란당시 일본에 납치되어온 조선인 포로들이 영세를 받아 그리스도교를 믿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도쿠가와막부가 그리스도교 탄압령을 내렸을당시 그리스도교인의 인구는 약 75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오늘날 일본의 그리스도교인 (천주교+개신교)의 수와 같습니다. -
 
일본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을 '기리시탄' (キリシタン) 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멜표류기에 의하면 제주도 목사 이원진이 하멜 일행에게 "그대들은 서양의 길리시단자(吉利支丹者)인가?" 라고 물었다는 내용이 전하는데, 당시 조선이나 명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을 '길리시단'으로 적었던것 같습니다.
 


16세기 후반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제단의 모습, 나무판에 옻칠을 하고 자개장식을 붙여 만들었다.
 


17세기초, 장식용 노리개로(네쓰케) 만들어진 예수그리스도상의 모습
 


일본에서 그려진 종교화,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1590~1600년대, 템파라로 그림)
 
하지만 기리시탄에 대한 탄압은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탄압으로 성 미키 바오로등 26명의 순교자가 발생한 이후 1638년 시마바라 봉기를 절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박해에 대한 이유로는 당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경쟁상대였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제국주의자들이라고 선동해, 막부가 그들이 식민정복을 하기 전에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교에서 주장하는 남녀평등이 막부의 엄격한 사농공상 신분제도와 위배되어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막부는 매년 정월이 되면 '후미에'라는 의식을 실시하게 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한 것을 바닥에 놓고 사람들마다 이것을 밟고 지나가게 해서, 만약에 이것을 밟길 주저하거나 밟기를 거부하는 자가 나타나면 그를 그리스도교인이라 하여 체포하고 처형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큐슈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숨어서 남몰래 그리스도교 믿음을 지켜나갑니다. 이들을 가쿠레 기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 숨은 기리시탄)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1857년 강제개항된 일본에 입국한 프랑스신부에게 자신들이 그리스도교 믿음을 지키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오랫동안 탄압을 피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로마가톨릭 고유의 전례에서 벗어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정작 천주교회 내에서는 적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이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얻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는데, 명치유신 이후 정부는 국가신도를 창설하고, 일왕을 신으로 여기는 국가신도외의 다른 종교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그리스도교의 경우 천황숭배에 극히 반대했고, 자유연애등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황주의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비난당하고 배척받았습니다.
 


가쿠레 기리시탄들이 미사에 사용했던 성모자상의 모습. 불상의 모습으로 위장되어있지만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구도가 조각 전반에 나타나있다.
 


가쿠레 기리시탄의 그림, 성모상의 얼굴을 부처로 바꾸었을뿐 전반적인 구도는 성모상과 같다.
 


불단으로 위장한 가쿠레 기리시탄의 제단, 오늘날 이들은 대다수가 로마가톨릭교회에 흡수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하나레 기리시탄(離れキリシタン - 분리된 기리시탄)이라고 불리는 조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뒤에 조각되어있는 십자가의 모습, 대부분 가쿠레 기리시탄의 조각상의 뒷면에는 이런 십자가가 나타나 있는데, 평소에는 불상으로 위장하다가 미사를 드릴때는 뒤면으로 돌려 사용했던것 같다. 이들은 매주 불교의 예불의식과 같이 공소예절을 행했다.
 


 

♪그레고리오 성가 - 빠스카의 희생 (Victimae paschali)
-글: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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