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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게임 아이템 '집행검' 사는데 무려 109억원? …게임업계,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

GODblessus 2023. 12. 14. 19:46
 

[단독]게임 아이템 '집행검' 사는데 무려 109억원? …게임업계,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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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리니지, 로또 1등보다 낮은 확률형 아이템 판매

유료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아이템 다시 확률형 아이템 제작

글로벌 게임 시장 규제 움직임…주무부처인 문체부도 ‘사행성 문제’ 연구용역 중

리니지 유료 확률형 아이템 '영웅의 유물 상자'. 사진=리니지 홈페이지 캡쳐
[데일리한국 황대영 기자] 직장인 A씨는 최근 게임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모바일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지쳐 PC온라인 게임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즐겼던 PC온라인 게임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이 과도하게 등장한 것이다. A씨는 월 정액모델 게임에서 로또 1등 당첨에 버금가는 확률형 아이템을 보며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를 통해 자율규제를 진행하는 확률형 아이템은 여전히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오픈마켓 매출 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모바일 게임 중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게임은 손에 꼽을 정도다. 모바일 게임에서 주요 BM(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확률형 아이템은 이제 PC온라인 게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1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이머들과 게임사 사이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애증의 대상이다.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고급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에 포함돼 있으며, 그 확률은 소수점 몇 자리를 내려올 정도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는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의 라이프 사이클(수명)을 줄이더라도 게임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줬다.

 

◇ 리니지, 로또 1등보다 낮은 확률형 아이템…이용자 불만 증가

'영웅의 유물 상자' 보너스 아이템 획득 확률. 사진=리니지 공식홈페이지 캡쳐

최근 엔씨소프트의 장수 PC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다.

엔씨소프트는 ‘영웅의 유물 상자’를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16일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1개 1000엔코인(1000원), 11개 1만엔코인(1만원), 57개 5만엔코인(5만원)에 판매하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다. ‘영웅의 유물 상자’는 과거 판매한 ‘커츠의 유물 상자’, ‘그림리퍼의 유물 상자’ 등 ‘유물 상자’의 최신 버전이다.

‘영웅의 유물 상자’는 사용하면 일정 확률로 보너스 아이템 50종을 얻을 수 있다. 50종 아이템 중에서는 ‘진명황의 집행검(이하 집행검)’, ‘변신 지배 반지’와 같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고가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영웅의 유물 상자’를 수백만원치 개봉하는 인터넷 방송이 줄을 잇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보너스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다. 엔씨소프트가 공개한 ‘영웅의 유물 상자’ 확률 정보에 따르면 집행검을 포함한 전설급 무기 8종의 확률은 0.000008%다. 로또 1등 당첨될 확률은 814만5060분의 1, 백분율로는 약 0.000012%다. 단순 확률 계산으로도 집행검 2개를 뽑을 확률이면, 로또 1등에 3번 당첨될 확률이다.

1개를 뽑을 수 있는 기대 값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가장 저렴한 57개에 5만원짜리 아이템을 사더라도 완전한 집행검을 얻으려면 약 109억원을 써야 한다. 심지어 집행검보다 확률이 낮은 변신 지배 반지를 얻으려면 175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확률이 거의 없는데도 게이머들의 한탕주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그간 엔씨소프트는 이런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때마다 “기본 아이템에서 보너스 아이템을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게임학회장)은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 이슈와 맞물리게 되면 결국에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 하락과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며 “사회적 우려가 큰 만큼, 게임업체는 확률형 아이템을 놓고 장기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유료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아이템으로 다시 확률형 아이템 제작

엔씨소프트가 공개한 '영웅의 금빛 상자' 아이템 획득 확률. 사진=리니지 공식홈페이지 캡쳐
그런데 엔씨소프트는 이번 ‘영웅의 유물 상자’에서 그런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기본 아이템으로 다시 확률형 아이템을 만드는 ‘컴플리트 가챠(콤푸 가챠)’와 흡사한 시스템을 넣었다. 게이머들에게 악명이 자자한 컴플리트 가챠는 과거 일본에서 유행했지만 일본 소비자청이 법률 위반으로 유권 해석하면서 판매가 중지됐다.

영웅의 유물 상자는 사용하면 ‘영웅의 유물 주머니’가 기본적으로 3개가 100% 나온다. 유료 재화나 다름없는 ‘영웅의 유물 주머니’를 3000개 모아서 제작하는 ‘영웅의 금빛 상자’가 또 확률형 아이템이다. 영웅의 유물 주머니 3000개는 최소 87만7000원을 결제해야만 얻을 수 있다. 사실상 ‘영웅의 금빛 상자’가 87만7000원인 셈이다.

이렇게 만든 영웅의 금빛 상자는 사용하면 확률적으로 게임 기술서 23종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또 ‘확률’이라는 점이다. 가장 가격이 비싼 스킬 3종 ‘카운터 배리어 베테랑’, ‘데스페라도 앱솔루트’, ‘아머 브레이크 데스티니’는 확률이 각각 0.8%, 0.5%, 0.4%다. 해당 기술서를 얻기 위해서는 영웅의 유물 상자를 각각 1억962만원, 1억7540만원, 2억1925만원을 써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엔씨소프트는 기술서가 아닌 게임 아이템 제작도 ‘확률’로 만들었다. 이 역시 재료는 ‘영웅의 유물 주머니’다. 게임 내 희귀한 아이템만 모아둔 유료 제작 시스템은 10% 확률로 성공한다. 포르세의 검을 1개 얻으려면 영웅의 유물 주머니 6500개, 나이트발드의 양손검은 5500개가 필요하다. 구매 가격으로 환산 시 각각 190만원, 16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온다.

이 같은 영웅의 유물 주머니를 활용한 확률 아이템 제작은 지난 9일 새롭게 열은 ‘그림리퍼’ 서버에서 불티나게 진행되고 있다. 서버 오픈 초기 아이템이 부족한 시기에 너도나도 10% 확률을 바라며 제작을 시도 중이다. 사실상 게임 내 희귀 아이템을 수백만원에 판매하는 꼴이다.

리니지를 플레이 중인 한 이용자는 “리니지 내 드롭 아이템이 ‘기운을 잃은 아이템’으로 변경돼 확률적으로 획득하는 마당에,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이어 유료 확률 제작까지 등장했다”며 “강화도 확률, 아이템 획득도 확률, 제작까지 확률 등 리니지가 ‘확률형 게임’으로 변했다”고 토로했다.

◇ 공정위, 확률 조작 게임사 과태료 처분…글로벌 게임 시장 확률형 아이템 규제 움직임까지

비단 확률형 아이템은 엔씨소프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넥슨, 넷마블, 넥스트플로어 등 3개 게임사에 대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허위 정보 표시 및 과장 및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및 과태료 2550만원, 과징금 9억8400만원을 부과했다.

유래가 없는 사상 최대 금액의 과징금 처분을 내린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확률 및 획득기간과 관련된 허위로 표시하는 거짓·과장 및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논란이 뜨겁다. 미국과 유럽(EU)를 중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인 규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국내 게임업계가 금기시 여기는 ‘도박’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벨기에 게임위원회는 ‘현금으로 구입하는 랜덤 상자를 통해 특정 아이템을 확률로 뽑는 방식은 도박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현지 매체 VTM Nieuws에 따르면 코엔 긴스 벨기에 법무장관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도박성 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며 “유럽 전역으로 금지령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다른 EU 회원국인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16일 프랑스 의회 제롬 듀란 상원의원은 온라인 도박위원회에 “결제 규모가 커지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이용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과금을 많이 한 이용자가 게임에서 이기는 ‘페이투윈(pay to win)’ 시스템과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정치권의 비판이 이어졌다. 크리스 리 하원의원은 지난해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심리적, 감정적으로 도박을 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들이 게임에 수천달러를 결제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며 “약탈에 가까운 게임들이 미성년자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확률 공개만으로 정부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규제가 들어가는 부분은 시장의 자율성 또는 업계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내 게임업계 확률형 아이템 자율 규제 강화와 더불어 확률형 아이템의 사행성 문제에 대해서도 연구 용역을 거쳐 개선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황대영 기자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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