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미스테리/종말론

일루미나티

GODblessus 2022. 12. 18. 21:19

일루미나티

최근 수정 시각: 2022-12-11 18:40:02
  동음이의어 및 여기에서 모티브를 딴 것들에 대한 내용은 일루미나티(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실존했던 일루미나티의 상징, '미네르바의 부엉이.'[1]
음모론 속 일루미나티의 상징, '갓돌 안에 그려넣은 전시안 피라미드'
이미지는 1달러 도안 속 미국 국장의 뒷면이다.[2]

1. 개요2. 역사3. 음모론
3.1. 반박
4. 여담
4.1. 한국에서의 반응
5. 밈 (일루미나티 드립)6. 대중매체에서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눈달린 삼각형
일루미나티(Illuminati)는 철학적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후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급진적 성격의 자발적 결사체이다. '광명회()'또는 '바이에른 광명회'로 번역되기도 한다.[3][4] 단체의 명칭은 라틴어로 '계몽하다', '계몽된 자' 혹은 '밝히다, 깨달은'이라는 뜻의 'illuminatus'의 복수형에서 유래했다.

실제 역사에서 일루미나티는 10년 내외의 짧은 기간 잠시 활동하다가 해산되었으나, 오늘날 "사실은 해산되지 않고 잔존한 그림자 세력이며,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갖고 뒤에서 각국 정부, 기업들을 조종하다 어느날 수면 위로 등장해서 인류를 통제하기 쉬운 숫자가 될 때까지 감축하고, 전체주의 세계정부를 세워 지배하려 든다"는 식의 음모론이 유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일루미나티는 종종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 N.W.O.)'에 관해 이야기할 때 회자되곤 한다.

음모론자들은 18세기 일루미나티가 바이에른 정부에 탄압받을 때 독일 유대계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 프리메이슨 조직에 영향력을 가지게 되자 일루미나티를 만들었고, 점점 힘 있는 재력가나 정치인, 행성의 식민지화를 노리고있는 사악한 외계인(렙틸리언, 그레이)들이 합세하여 힘이 커졌으며 소수에 불과한 이들이 지구의 모든 것을 장악했고 자신들만의 세계로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일루미나티와 함께 막대한 권위와 부를 앞세워 각종 전쟁, 기근, 테러, 경제난, 전염병 확산 등을 일으켜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이 신세계 질서의 확립을 위해 뒤에서 활동하는 주모자들이라 믿으며 일루미나티가 프리메이슨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일루미나티를 따르자는 음모론자들도 있다. 많지는 않지만.

2. 역사[편집]


일루미나티의 창립자는 바이에른의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실천 철학을 가르치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 교수로, 1776년 5월 1일에 일루미나티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여느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던 바이스하우프트는 절대왕정 가톨릭 교회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제를 전복시키고 자유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했다. 바이스하우프트의 사상은 점차 지지를 얻어 바이에른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는데, 전성기에는 유럽 각국에 지부가 설립되고 귀족, 정치인, 지식인, 부자들이 가입해 회원이 2-3천 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일루미나티의 사상은 각국 정부 세력에게는 너무나 급진적이고 위험했기 때문에 공권력에 의해 탄압받기 시작했고, 이를 피하려 프리메이슨의 체계를 모방해 비밀결사이자 지하조직으로 변모했다.

1785년 교황 비오 6세는 일루미나티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가톨릭 사회[5]에서 이단의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곧 파문으로 이어졌으므로 많은 구성원들이 탈퇴하였다. 이로써 일루미나티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해산 이후 대대적인 검거와 탄압으로 1790년경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1800년대 이후에도 세간에서는 '일루미나티가 비밀리에 유지되어 정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인류의 미래에 관한 상상 이상의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음모론이 종종 회자되곤 한다. 이런 음모론은 일루미나티라는 단체가 가졌던, '적극적으로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던 급진적인 이미지'에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

당시 일루미나티의 급진적 계몽 사상은 미라보 백작에 의해 프랑스에도 소개되었으며, 이 밖에 로크의 인식론과 자유의지주의, 루소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사상의 유행은 민중들에게 하나의 정신적 동기가 되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에 일부 학계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면서 일루미나티의 급진적 사상이 끝나지 않고 마침내 실천되었다'고 주장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