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저출산으로 시작 된 대한민국 경제 대붕괴의도미노 식 붕괴

GODblessus 2023. 11. 28. 17:58

[영상] 비트코인③ 붕괴되는 아르헨 화폐…한국 원화도 붕괴될까?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아르헨티나는 반복적인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미 국가다. 2023년에도 화폐가치 폭락과 물가 대폭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가 전 세계에서 가장 최악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극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보다는 조금 낫다. 문제는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경제 위기

아르헨티나는 1900년대초까지 미국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세계 5대 경제 부국이었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남미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됐을 정도로 발전된 나라였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다.

엄청난 양의 소고기와 밀 등을 수출해 왔다. 하지만 목축업 등의 농업에 치중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선진공업국의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 돼 버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진 = 셔터스톡]

게다가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남미의 대표적인 국가가 됐다. 아르헨티나는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 조짐이 보일 때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 왔다.

지난 40년간 국채 '채무불이행' 횟수가 무려 9번이나 발생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신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가 크고 부패문제도 심각하며 인플레이션도 높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구조가 아직도 1차 산업 위주라는 점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옥수수, 콩기름, 대두 등 농산물에 편중돼 있다. 수출 품목의 무려 60%가 농업이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석유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원유 부국도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도 워낙 뛰어난 자연 환경을 타고난 덕에 국민들의 먹을 거리는 풍요롭다. 광활한 땅에서 각종 농산물, 소고기가 넘치도록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질 좋은 소고기가 아르헨티나 현지에서는 한국 가격의 5분의 1 이하로 판매된다.

그래서 '아사도(asado)'라는 음식 문화도 생겼다. 아르헨티나의 '아사도'는 목동 가우초(gaucho)들이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불 옆에 고기를 세워 걸고 구워 먹던 데서 유래됐다. 현대에 와서는 '무쇠그릴을 이용해 돼지고기나 소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뿌려 숯불에 구운 전통 요리'로 변신했다.

조리시간만 최소 몇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소고기가 풍부한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에서만 발달해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도전하는 아르헨티나의 시그니처 요리다.

아사도 [사진 = 셔터스톡]

이렇게 여유가 넘치던 아르헨티나였지만 2000년대 이후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서 반복적으로 위기가 발생해 왔다. 아르헨티나는 1차산업국이라 대부분의 공산품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그래서 환율이 폭락하면 수입품의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는 불완전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아르헨티나 경제 문제의 핵심은 인플레이션

아르헨티나의 경제지표는 외견상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3년 4월에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데이터 베이스 자료'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은 2018년에 -2.6%, 2019년에 -2.0%, 2020년에 -9.9%로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후퇴했다.

하지만 2021년에 10.4%, 2022년에는 5.2% 플러스 성장하며 안정을 찾아 가는 모양새였다.

 

아르헨티나의 1인당 명목 GDP로 13,655달러로 한국의 32,886달러보다는 훨씬 적지만 남미 국가 중에서는 높은 편이다.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도 2020년에는 103%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022년에는 84%로 낮아졌다.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건 잦은 채무불이행으로 신용을 잃어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던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뭘까? 바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다. 2021년의 인플레이션은 48%다. 이 수치도 높은 편인데 2022년에는 무려 72%다. 특히 2023년의 위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인플레이션이 이미 100%를 훌쩍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는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유행이다.

◆ 아르헨티나의 화폐개혁과 화폐기능 상실

경제위기를 겪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아르헨티나 역시 변화무쌍한 화폐정책과 환율정책을 구사해왔다. 그래서 한 때는 아르헨티나 페소화와 달러화를 고정(페그제)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몇 번의 화폐개혁을 진행한 끝에 지금은 태환 패소(ARS, Peso Convertible)를 쓰고 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 2023년 8월에 기준금리를 무려 21%포인트 인상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기준금리는 118%가 됐다. 한국의 기준금리 3.5%와 비교하면 믿어지지 않는 수치다. 2000년대 들어 아르헨티나 기준금리가 100%를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인 2018년9월의 아르헨티나 페소 공식 환율은 1달러당 37페소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23년8월의 공식 환율은 1달러당 350페소로 급락했다. 달러가치가 9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5년간 페소 화폐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화폐 1,000페소의 실질 가치가 5년뒤에는 9분의 1인 110페소로 급격히 추락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암시장 환율, Dolar Blue)이 2배 가까이 차이 난다는 점이다. 현재 암시장 환율은 공식환율의 2배인 1달러당 700페소를 뛰어 넘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환율 하락이 아니라 화폐붕괴 수준이다.

외환보유고가 지속적으로 감소중인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환부족을 이유로 국민 1인당 환전 가능 달러를 1개월에 30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페소로 월급을 받으면 바로 '암시장'으로 뛰어가 달러로 바꿔 놓는다. 아니면 바로 물건을 사서 보관해 놓는다. 오늘이 가장 싸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주로 암시장에서 환전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암시장에 유입되는 관광객 달러를 흡수해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려는 목적으로 암시장환율과 가까운 관광환율을 만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아르헨티나는 쇼핑 천국이 됐다. 환율이 폭락하면서 이웃나라인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 볼리비아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자국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가격에 쇼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 셔터스톡]

 

◆ 아르헨티나 대선? 누가 돼도 회생 쉽지 않아…각자도생!

반면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2023년 10월에 실시하는 대통령 선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 집권당은 좌파 페론주의 연합이다. 현금 살포의 포퓰리즘 복지정책으로 악명이 높다. 2023년 8월의 예비선거 결과 현 집권 세력의 대선후보인 '세르지오 마사' 경제부장관의 지지율은 3위에 그쳤다.

지지율 1위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차지했다. 현지에서도 깜짝 놀란 대 이변이다. 밀레이 후보의 공약 중 가장 파격적인 건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페소 대신 달러 도입"이다.

문제는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간에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의 비극이다.

이런 심각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민 모두가 다 힘든 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는 극심하다. 국민 중 약 40%는 빈민이다. 하지만 부자들 또한 넘쳐난다. 그래서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급식당과 비싼 공연들은 여전히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무료급식소에 의존하거나 버려진 음식을 먹는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도 많지만 비싼 고급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부자들의 숫자도 많은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베네수엘라처럼 자국 화폐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은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아예 물품거래에서 달러가 사용된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전히 페소화가 사용된다.

물론 아르헨티나에서도 달러는 중요하다. 부자든 중산층이든 젊은이든 모두 침대 밑에는 달러를 모아 놓는 게 유행이다.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는 실물자산인 부동산 보유를 꼽을 수 있다. 부동산은 휴지조각에 가까운 화폐보다는 낫다. 하지만 페소화 절하폭이 너무 가파른 게 문제다. 부동산 매도자들은 매물을 달러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달러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부동산도 엄청나게 하락 중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기준금리가 100%가 넘다 보니 정상적인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현금 부자만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어 매수 수요가 제한적인 것도 문제다.

결론적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부동산은 자국 화폐인 페소 가치 하락 방어에만 일부 효과가 있을 뿐이다. 또 페소화 기준으로 살펴봐도 연간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달러 외에 '금'과 '비트코인'도 필요해 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진 = 셔터스톡]

◆ 한국 원화 약세와 아르헨티나 페소화 약세…차이점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에서 달러자산은 중요하다. 한국도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신청 당시 원∙달러 환율이 2배 이상 급등해 1,965원까지 오른 적이 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이 60% 급등해 1,600원까지 치솟았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경제위기 상황에서 원화약세(달러강세)가 진행되면 달러 보유자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IMF 구제금융 당시의 1달러당 원화 환율 최고가는 1997년12월의 1,965원이었다. 만약 어떤 투자자가 환란 1년전인 1997년1월에 환율 845원을 적용해 원화 8억5천만원을 달러로 환전했다면 무려 1백만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랬다면 1년만에 1백만달러의 가치는 원화 19억7천만원의 가치로 높아졌을 것이다. 환차익이 무려 130%가 넘는다.

이론상으로는 이런 매수가 쉽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이런 방식의 매수가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유는 환율이 1,965원까지 치솟은 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이다.

이 당시 비정상적으로 급등했던 환율은 불과 몇 개월만에 큰 폭으로 낮아졌다. 또 환란 1년 뒤에는 1,210원까지 빠르게 하락하며 급속도로 안정화됐다. 2년뒤에는 원화 초 강세 현상이 나타나 환율이 1,140원까지 하락했다.

원화가 강세로 바뀐 이유가 뭘까? 경제구조가 1차산업인 농업과 축산업에 머물러 있는 아르헨티나와 달리 한국은 제조업이 강력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원화 약세 시 수출경쟁력이 급속히 회복되는 구조로 이뤄졌다.

따라서 한국에서 제조한 물건을 해외에 싸게 판매하고 그 댓가로 달러를 유입시키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와 달리 한국에서 달러가치가 9배 폭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IMF 위기 당시의 원화약세 현상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금세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 뒤 늦은 달러 투자보다 차라리 폭락한 국내 주식들을 타이밍 잘 맞춰 매수하는 전략의 수익률이 훨씬 더 양호했다. IMF 위기 당시 코스피 지수는 최저점이었던 277포인트에서 불과 1년 1개월만에 1,053포인트까지 회복됐다. 상승률이 무려 280%다.

이런 과거 사례로 볼 때 경제 위기시에 달러 투자 수익률만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소한 보유했던 달러를 좋은 타이밍에 원화로 환전해 다시 강남아파트를 30% 할인된 가격으로 샀어야 주식수익률과의 비교가 가능해 보인다.

IMF 구제금융 신청 직후인 1998년 한 해 동안 전국 아파트 가격은 통계상 약 -12% 하락했다. 하지만 이는 통계수치일 뿐 실제 체감상은 급매물의 경우 -30% 이상 하락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매수 기회를 잡아 낼 수 있을까?

실제로는 아주 소수의 승리자들 만이 좋은 환율로 원화 환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 강남아파트 급매물도 무한정 나오는 게 아니다. 몇 백 건의 급한 물건들이 거래되고 나면 호가는 조금씩 회복된다. 또 부동산 거래는 느리다. 거래량도 주식보다 훨씬 적다.

그 당시 환율 고점과 부동산 저점을 동시에 맞춰 수익 극대화에 성공한 사람은 현실세계에서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달러를 보유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환차익으로만 5년간 9배의 명목 수익을 내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사람들은 달러보유로 100% 이상의 대박을 내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미국 교포들 중 일부만 강남아파트 매수에 성공했다고 알려진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한국의 통화가치가 빠르게 회복되는 이유는 한국이 강력한 제조업 국가이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시점으로 살펴봐도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바이오 제네릭 등 여전히 막강한 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몇 개의 악재가 겹치면서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00원을 돌파했다. 오랜만의 원화 약세 구간이다. 한국의 최근 10년 장기평균환율인 1,150원과 비교하면 원화의 평가절하가 심각한 수준이다.

[사진 = 셔터스톡]

이런 상황을 근거로 한국경제 위기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지금 당장은 원화약세를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아직 한국의 제조업은 강력하다.

물론 미래에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 또한 보험 목적으로 일정부분의 달러 보유가 필요하다. 이유는 0.7에 불과한 심각한 저 출산율 때문이다. 이로 인해 먼 미래에는 한국의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

또 확률은 희박하지만 평화적인 남북통일도 원화 가치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다 원화 기반의 자산으로만 보유하는 건 피해야 한다. 하나의 통화자산에 올인하기보다는 다양하게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언제나 옳다.

미래의 원화 약세에 대비해 한국인들은 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 달러 기반의 글로벌 1등 플랫폼 기업 주식들을 포트폴리오에 담는다면 어떨까? 안정적인 달러와 성장하는 미국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전략이다.

또 실물자산인 부동산도 필수다. 도심 지역인 서울이나 수도권의 주거용 부동산은 거주 목적으로도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금'이나 '비트코인'도 포트폴리오에 일정 부분 편입한다면 유동성 측면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생했던 화폐붕괴의 역사적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 보자.

 

④편에서 계속… 비트코인 ④ 달러가 세계 최강? 화폐가치는 박살…대안은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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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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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달의 경제 이슈 (2019년 05월 기사)

기고: 한상춘 한국경제TV 객원 논설위원 겸 미래에셋대우 WM컨설팅본부 부사장

 

경제학 4.0' 시대에 세계와 단절되는 한국 경제
'베네수엘라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금융위기 이후 세계와 한국 경제는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 규범과 이론, 관행이 통하는 '노멀' 시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케인즈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경제학 4.0 시대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경제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파리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악화되는 추세다. 국제규범 이행력과 구속력도 2차 대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역 블록은 붕괴 조짐이 일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놓고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렉시트(Italexit=Italy+exit)까지 우려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는 한차원 낮은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CMA)으로 재탄생 됐다. 다른 지역 블록은 존재감조차 없다.

[그림 1] 세계 경제 성장 전망

자료: IMF

[그림 2] OECD 경기선행지수

자료: OECD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쌍무 협력도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가 우려될 정도로 복잡해 교역 증진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스파게티 볼 효과란 삶은 국수를 그릇에 넣을 때 서로 얽히고설키는 현상을 말한다. A국이 B국, C국과 맺은 원산지 규정이 서로 달라 협정 체결국 별로 달리 준비해야 할 수출업체에게는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 간에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생산카르텔과 같은 시장담합기구도 무너지고 있다. 올해 초 창설 멤버였던 카타르가 탈퇴한 것을 계기로 1961년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파장과 변화를 몰고 왔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다.

국제통화질서에서는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주목된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 즉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1)'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 매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보유 부담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국제금융기구의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판 IMF인 긴급외환보유기금(CRA)이 조성됐고, 유럽판 IMF인 유럽통화기금(EMF) 창설이 검토되고 있다. 중국 주도로 세계은행(World Bank)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신개발은행(NDF)과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이 설립됐다.

[그림 3]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주: 2019년 9월까지의 대중 무역적자

자료: 블룸버그

[그림 4] 미국과 신흥강국 갈등의 역사

자료: UN

세계경제와 국제통화질서의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포퓰리스트가 판친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 4.0(globalization 4.0)'과 같은 의미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 '외부성(externality)'이 급증한다. 외부성이란 '사적비용(PC·private cost)'과 '사회적 비용(SC·social cost)' 간 괴리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이라는 전제로 한 시장경제 효율성이 떨어진다. 외부성은 PC보다 SC가 적은 경우 '외부 경제(external economy)', 반대의 경우 '외부 불경제(external diseconomy)'로 나뉜다.

외부성으로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흔들리면 '가치(value)'가 '가격(price)'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현실 진단 자료로 경제지표의 유용성이 떨어진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여건에서 추진되는 경제정책은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즉 경제주체와 시장 반응까지 감안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작년 10월 이후 미국과 한국 경제처럼 지표상으로 괜찮은데 경제주체가 침체를 우려하고 시장은 주가 폭락 등으로 과민하게 반응했던 상황을 가정해 보자.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금리인상 속도 조절 등으로 경기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금리 동결과 함께 0.5% 포인트 인하설까지 나돌고 있다.

반면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의 일부 경제 각료와 국회위원, 그리고 진보학자까지 '위기를 조장하는 가짜 미네르바 세력'으로 무시한다. 심지어는 경제전망기관의 비관적인 예측까지 간섭하거나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통계만 마사지 해 발표한다. 통계조작 우려까지 제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 5] 한국 경제성장률

자료: 한국은행, IMF

[그림 6] 세계 GDP, 수출 한국 비중

자료: 한국은행

오히려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등을 활용해 경제지표와 경제주체의 반응 간 괴리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다. 텍스트 마이닝이란 중앙은행 총재가 금리를 올리겠다고 발언한 이후 매파적 성향의 어조는 '+1', 비둘기파 성향의 어조는 '-1'로 빅데이터지수를 산출해 경제주체의 반응을 파악하고 시장 친화적으로 조절해 나가는 기법을 말한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시계열 자료를 토대로 한 각종 모델에 의한 전망치도 예측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전망기관이 예측 주기를 '분기'로 단축시켜 대응한 지 오래됐다. IMF의 기업취약지수(CVI), 일본은행(BOJ)의 대차대조법(BS) 방식, 미국 경기싸이클예측연구소(ERCI)의 규브 방식 등 새로운 예측기법도 제시되고 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학 4.0 시대에 있어서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대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작년 말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이 '갈라파고스 함정2)에 빠지고 있다'고 발언한 정도로 경제학 4.0 시대에 나타나는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사례는 의외로 많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을 지향하고 있으나 한국은 내년도 슈퍼 예산이 상징하듯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선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오링' 대비 '오프쇼오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 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명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부 정책결정과 집행권자의 의식과 가치가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특정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를 주도하지 못하면 최소한 세계 흐름에는 동참해야 한다. 대내외 여건이 급변했던 1990년대 후반에도 나라 밖에서는 위기가 닥친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 경제 각료는 '펀더멘털이 괜찮다'는 동떨어진 진단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이 악화되는 점이다. 국가신용등급이 정체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지수에서는 선진국 예비명단에서 탈락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재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과 자금도 들어오지 않거나 빠져 나간다. 주한 외국기업 단체는 각종 규제강화 등으로 경영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고 연일 비판하는 가운데 실제로 철수하는 외국 기업과 금융사가 늘고 있다. 우리 기업과 돈 그리고 사람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이른바 '3대 공동화 현상'이다.

[그림 7] 주요국 출산율 추이

자료: UN

[그림 8] 지역별 노동인구 증가율 변화

자료: IMF

특정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과 돈, 그리고 기업이 몰려들어야 한다. 던킨 도넛처럼 핵심 중심부가 비워있으면 대내외 변수에 취약하고 경기가 쉽게 불안해지는 '천수답 경제'가 된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함께 세계 양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2.1%까지 내려 잡고 있다.

특정국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결정과 집행자일수록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하고 훈련된 글로벌 인재가 배제돼 있을 때다. 국정운영 우선순위도 '대외'보다 '대내', 경제 각료가 '유연한 사고'보다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을 때도 나타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이념이나 주장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경우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국 경제가 더 이상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세계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시간만 지나면 되겠지' 하면서 경제정책과 운용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삶은 개구리 신드롬(boiled frog syndrome)' 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그때는 베네수엘라 전철을 밟게 된다.

분야별로 △경제 활력 과제로는 심리 안정, 시장과 현장 중시, 친(親)기업, 규제 완화, 감세 추진 △잠재성장과제로 구조개혁, 제조업 리쇼오링과 4차 산업 육성 △민생경제과제로 국민 생활경제 현안 우선 해결 △대외정책과제로 대중국 쏠림 완화와 상시 국가IR 활동 전개 △남북협력과제는 다른 국정과제(특히 경기) 간 균형 속 추진 △정책운영과제로 소득주도 성장,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 등에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림 9] 한국 경제 투자 매력도 비교

자료: 블룸버그, 데이터스트림, CEIC, OECD, 한국은행


  • 1)
  •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성 간의 상충관계를 말한다. 중심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환류되는 메커니즘이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2)
  • 갈라파고스 함정이란 중남미 에콰도르령(領)인 갈라파고스 제도가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km 이상 떨어져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가장 잘 유지되는 만큼 외부와 떨어져 있는 것에 빗돼 세계 흐름(글로벌 스탠다드)과 격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오피니언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시장의 복수…“한국 경제에 먹을 게 없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2019.11.13 00:48

지면보기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먹튀 논란’마저 사치라는데…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일한 글로벌 금융 CEO의 이야기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나 문재인의 평화경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제 자본이 한국 경제에 완전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JP모간자산운용코리아는 한국에서 11년 만에 펀드 사업을 접었다. 임직원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UBS 역시 보유 중이던 하나UBS자산운용의 지분을 매각했다. 그는 “한때 외국 자본에 ‘먹튀’라고 비난했지만 이제는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아예 먹을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먹튀 논란도 사치스러울 만큼 한국 경제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외국 돈줄의 ‘한국 엑소더스(대탈출)’가 대세다. 최근 2년 사이에 골드만삭스·바클레이스·맥쿼리은행 등이 줄줄이 서울지점을 폐쇄하고 떠났다. 한때 해외 본사에서 낮은 금리에 차입한 달러를 굴려 재미를 보았지만 한국에도 저성장과 저금리가 굳어지면서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황금알을 낳을 경쟁력 있는 산업이나 기업도 찾기 어려워졌다. 덩달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워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해외직접투자는 올 상반기 150억 달러를 넘는 등 연일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접투자는 100억 달러 이하로 게걸음 치고 있다.

심각한 만성 질환 앓는 한국 경제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임기 2년 반 동안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웠다”고 자랑했지만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정반대다. 멀쩡했던 경제가 무너져내리는 징조가 뚜렷하다.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는 등 주요 경제 지표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정부는 미·중 무역마찰 등 외부환경을 탓하지만 문제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지금은 기준 금리 1.25%로 역사상 최저인 데다 올해 469조9000억원(전년 대비 9.5% 증가)의 수퍼 예산이 투하되고 있다. 원화도 달러당 1165원의 고환율이다. 예전 같으면 수출이 폭발하고 성장률도 가파르게 치솟았을 환경이다. 그런데도 11개월 연속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감소하고, 설비 투자 역시 6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에다 성장률마저 곤두박질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심각한 만성질환을 앓고 있음을 의미한다.

왜 이런 비극적인 수치가 나올까.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으로 인해 기업 부담이 늘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다시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경제 주체의 의지를 죽여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린 점이 현 정부가 가장 잘못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정책 실패에 따른 시장의 복수라는 것이다.

일자리 정부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통계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라지만 경제전문가 사이에선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최저임금 부담을 피하기 위한 알바 쪼개기로 17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들이 늘고 정부가 돈을 퍼부어 만든 노인 일자리도 모두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자랑해온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감소한 것도 시장의 역습에 따라 혼자나 가족끼리 영업하는 경우가 급증한 탓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주요 산업의 국제경쟁력 하락으로 지목한다. 고부가가치의 첨단 산업은 선진국을 못 따라잡은 상태에서 중후장대 산업은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정책이 구조개혁을 외면하고 분배에 치우치면서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생산성 하락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무디스와 S&P 등 신용평가기관들도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주 52시간 근로제·법인세 인상·강성노조·과도한 복지 확대로 실물 경제가 장기적 저성장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재정 살포에만 매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자신의 발언까지 뒤집어 버렸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22조짜리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해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낭비만 초래했다”며 맹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50조짜리 도시재생 뉴딜 사업, 그리고 100조가 넘는 토건 사업까지 예타를 무시하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지금 재정을 풀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라며 “확대 재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주장했다. 고통스럽더라도 경제 구조를 수술하고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일단 돈으로 막고 보자는 안이한 접근이다.

안이하게 재정 중독에 빠지나

물론 경제가 어려우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게 교과서적 해법이다. 하지만 재정 투입으로 시간을 벌면서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는 구조조정을 통해 풀어가는 게 정석이다. 이창용 IMF 아태국장도 “중요한 것은 재정 지출의 용도다. 공공부문의 단기 일자리 창출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구조조정이 뒷받침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재정은 일자리가 아닌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확대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 재정 지출의 내용을 보면 악성이다. 생산적인 투자지출이라면 경제성장으로 돌아오겠지만 기초연금·아동수당·노인 공공근로 등 선심성 현금을 퍼붓는 이전 지출이 크게 늘고 있다.

강남 집값도 아마추어 정책에 대한 시장의 역습이다. 그동안 김수현 전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무려 17차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30%나 폭등했다. 이번 분양가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친문 핵심 의원들 지역구인 목동과 북아현동은 쏙 빠졌다. 김 장관 지역구(고양 정)와 친문 부산파의 거점인 부산은 아예 조정대상 지역에서 해제됐다. 이런 정치적 게리맨더링 때문에 부산·대전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간 원정 쇼핑꾼들에 의해 미분양 아파트들이 동났다고 하고, 그제 강남 아파트 청약에는 461대 1의 로또 광풍이 불었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부는 풍선 놀이가 취미냐” “김현미 장관은 두더지 잡기를 좋아하나 봐”라는 비아냥이 넘쳐난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다는 해외 언론들의 경고는 쉽게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떠받쳐온 두 기둥은 매년 1000억 달러에 이르던 경상수지 흑자와 국가 부채비율 30%대의 탄탄한 재정 건전성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 60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 발행 등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놓고 마구 신용카드를 그어댈 조짐이다. 여기에 반도체 침체와 경기 불황으로 세수마저 꺾였다. 이에 따라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국가부채비율이 곧 40%를 돌파해 2022년에는 45% 선에 이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까지 680조원이던 국가 부채 역시 2023년엔 10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경상수지 흑자도 수출 급감에 따라 지난 1~9월 414억 달러로 내려앉았다. 이대로 가면 언제 시장의 복수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현 정부는 섣부른 경제 실험으로 성장과 분배를 다 놓쳐 버렸다. 총수요를 늘린다는 명분 아래 시장과 가격에 직접 개입했던 정책들이 기업에 비용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공급 부문에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자해 행위가 일자리 대란과 저성장, 양극화 심화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경제학계는 시장 원칙에 맞게 정책 궤도를 수정하라며 “지금까지 경제가 나빠진 게 정책 실패 때문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제대로 된 정책도 나올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제 문 대통령이 “계속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국경제학회 등의 합리적 제안마저 무색해져 버렸다.

"경제 성공” 우기면 배신감 깊어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최근 펴낸 『대변동-위기·선택·변화』에서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12가지의 주요 요인을 꼽았다. 그 중 첫 번째가 위기를 있는 그대로 위기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자신의 책임을 수용하고 좋은 본보기를 찾아야 하며, 정직한 자기 평가 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정부는 경제 위기를 부인하고 줄곧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며 그 시기를 2018년 말→올해 초→2019년 하반기로 계속 늦췄지만 빈말이 됐다. 하필이면 좋은 본보기도 성장률을 끌어올린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찾아야지 왜 포퓰리즘으로 망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 눈길을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체감 경기가 어려운데 정부만 자꾸 “경제가 성공하고 있다”고 우기면 좌절감과 배신감만 깊어질 뿐이다. 기어를 후진에 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을수록 차는 자꾸 뒤로 가게 된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고집하면 할수록 더 큰 시장의 복수를 부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에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는 소리 만큼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경고는 없다. 그런 말이 떠도는 한 미래는 암울할 따름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치열한 현장과 정중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리 사회 현안을 보다 전체적으로 살피고 싶습니다. 더 높은 곳을 꿈꾸며 낮은 곳을 살피려 합니다.

newsty@joongang.co.kr

 

 


◆ 레이더뉴스 / 국가실패 기로에 선 한국 ⑥ 역사의 교훈 ◆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웃라이어 국가다. 전쟁 잿더미 위에서 불과 반세기여 만에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보다 앞선 경제대국들은 모두 식민지를 거느렸던 옛 제국이다. 한때 식민지로 추락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던 국가가 지금 위치까지 올라선 것 자체가 기적이란 평가다. 하지만 한때 후진국이었다고 해서 영원히 후진국이란 법도 없지만, 선진국이 됐다고 해서 그 지위가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게 역사의 철칙이다. 특히 정치인 등 사회 엘리트계층이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고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이에 제동을 걸 장치가 점차 무력화될 때 세상은 아래에서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르헨티나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경제 선진국이었다. 1914년 해외 진출을 노리던 런던의 유명 백화점인 해러즈 백화점이 1호점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열 정도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은 유럽의 강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대명사 '페론주의'로 대표되는 후안 페론 대통령 집권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는 변곡점을 맞았다. 1946년 집권 이후 페론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복지 지출을 대폭 늘렸다. 은퇴자 연금을 한꺼번에 올려주고 국가 예산의 19%를 생활보조금에 쓰는 등 퍼주기 정책이 일상화하면서 재정이 바닥났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21세기 들어 아르헨티나가 첫 외환위기를 맞은 국가가 된 것도 이 같은 근시안적 경제정책과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에 따른 부채, 그리고 개혁에 반대한 노조 때문이었다. 1989년 연 5000%를 기록할 정도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와중에 당선된 페론당 출신 메넴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1991년부터 고정환율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는 대신 페소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 주변 남미 국가가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면서 격차는 더 커졌다. 당시 브라질 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250~300달러 수준이었는데, 아르헨티나 근로자들은 700달러에 육박할 정도였다.

강성 노조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몰락하는 데 일조를 했다. 1999년 12월 취임한 페르난도데라루아 대통령이 재정건전성 우선 정책을 펼치자 2001년 7월까지 전국적인 파업이 6번이나 벌어졌다. 그해 10월 총선 참패로 데라루아 정책은 동력을 잃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01년 당시 사상 최대 규모였던 1000억달러의 국가부도(모라토리엄)를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후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채무조정을 하며 국제금융시장 복귀를 노렸지만 원리금을 모두 갚으라며 엘리엇 등 벌처펀드들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2014년 2차 디폴트를 맞기도 했다.

그리스의 국가실패는 더욱 치명적이다. 기득권층을 위한 비포용적 경제제도가 성장동력을 앗아감과 동시에 양극화까지 심화시켰다. 결국 관광업·해운업 위주 산업구조, 탈세로 커진 지하경제, 공무원 조직과 연금 확대 등 누적된 모순은 2009년 재정위기 때 폭발하고 말았다. 이미 복지 확대로 텅 빈 나라 곳간과 방만한 국가 운영은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탄력성(resilience)' 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결국 2010년 구제금융 신청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는 채권단의 긴축 요구와 국민의 반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서민들만 희생되고 있다. 우선 제대로 된 경제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면서 그리스는 지하경제 규모만 키웠다. 세금을 내지 않는 그리스 지하경제 비중은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관광업종에서는 현금으로 돈을 받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탈세가 관행화됐고, 해운회사들은 조세회피처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선박을 발주하고 운영했다. 설상가상으로 전통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약했던 그리스는 유로존 편입 이후에는 환율 방어장치마저 사라지면서 제조업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1971∼1980년 연평균 4.2%에서 2005∼2015년 0.02%로 급전직하했다. 지난해에는 오히려 GDP가 1년 새 0.05% 후퇴한 것으로 그리스 통계청은 추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는 구조조정과 성장동력 회복을 통해 정면돌파하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 불만 달래기에 치중했다. 포퓰리즘 정책 중 최악은 성장률 추락과 높은 실업난을 공공부문 인력 확충이라는 기형적 해법으로 풀었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불필요한 인력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였다. 공공부문 종사자 숫자가 점차 늘고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기득권이 되면서 자신들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늘렸다. 공무원, 법조인을 비롯한 사회 기득권층은 엄청난 연금과 가족수당, 국가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지만, 시간제나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은퇴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만 믿고 산업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다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베네수엘라의 흥망성쇠는 국제 유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전체 수출의 96%, 재정 수입의 50%, GDP의 30%가량을 석유에 의존한다. 유가가 높으면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지만, 그 반대면 나라 곳간이 비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남미 포퓰리즘의 대명사 격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1999~2013년)는 소위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도래했던 시기와 맞물린다. 차베스 정부는 고유가를 등에 업고 2003년부터 '볼리바리안 미션(Bolivarian Mission)'이라 불리는 각종 사회복지 사업에 나섰다.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무료 보건 시스템, 주택 건설 프로그램, 스포츠·문화 이벤트 등을 펼쳤다. 퍼주기식 무상 복지로 대중들의 환심을 사고 정권을 부양한 탓에 베네수엘라는 2006년부터 재정 적자 상태로 돌아섰다. 하상섭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는 "차베스 정부는 쿠바 의료진을 불러와 무료 의료 서비스를 하고, 무상 교육사업도 2개나 했지만 모두 재정만 투입하고 방만하게 운영했다"며 "정책이 정권 유지나 차베스 대통령의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운은 차베스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에 들어섰다. 이는 국제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석유 가격이 호황기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자 당장 국가 차원에서 쓸 수 있는 돈이 말라갔다. 경상수지는 2014년부터 적자가 났고, 외환보유액은 2008년만 하더라도 35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말에는 110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 외에는 산업 기반이 취약해 각종 공산품은 물론 금융 서비스 등을 해외에 의존한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 수출이 직격탄을 맞다 보니 내수용 수입도 급감해 국내 물가가 치솟으며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476%에 달했다. 현지에서는 올해 1600%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헛발질을 했다.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가격 통제' 카드를 빼들었지만 역효과만 불러왔다. 베네수엘라 근무 경험이 있는 기현서 전 주칠레 대사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망가진 건 시장 경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며 "가격을 통제하면서 민간 기업들이 생산 원가를 맞출 수 없어 쓰러졌고, 정부는 그런 기업을 살리는 게 아니라 공장을 몰수하는 형식으로 보복하며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김권식 국제금융센터 신흥국팀장은 "베네수엘라는 단기 외채 만기가 돌아오면 석유를 팔아 갚아왔다"며 "'언 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인데, 언제까지 가능할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기획취재팀 = 서동철 기자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김세웅 기자 / 이승윤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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