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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간 ‘中부패의 온상’ 삼합회 시진핑 ‘범죄와의 전쟁’ 계기로 드러난 삼합회

GODblessus 2023. 10. 26. 09:41
출처: 문화일보 2013년 5월10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51001033332032004&w=ns


지난 3월 28일 저녁 중국 선전(深圳)시의 푸톈더싱청(福田德興城)호텔 연회장, 화려한 샹들리에 장식 아래 결혼식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주인공인 신랑의 이름은 페이젠(肥堅), 20여 원탁좌석에 160여 명의 축하객들이 둘러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좌석 중간 중간 금팔찌 등 장신구를 한 몇몇 젊은 신사들은 체구가 단단하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축하객 중에는 홍콩 무술영화의 유명 조연배우 천후이민(陳惠敏)의 얼굴도 보였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파티가 진행되는 도중 한 무리의 경찰이 들이닥쳤고 파티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며칠 뒤인 4월 2일 중국 인터넷 뉴스 포털 텅쉰왕(騰訊網)은 선전 경찰이 160명의 홍콩 범죄 조직원들을 붙잡았으며 천후이민 등 간부급 14명에 대해 따로 조사를 벌였다고 전했다.

중국 역사 관련 격월간지인 런원리스(人文歷史) 최신호에 따르면 이날 구속된 페이젠은 홍콩의 유명한 범죄조직 ‘삼합회’ 한 계파인 ‘워싱워’(和勝和) 조직의 간부다. 워싱워 조직은 홍콩의 성매매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조직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페이젠은 결혼식을 가장해 워싱워 조직의 두목으로 취임하는 의식을 진행하려 했었다. 워싱워 조직원 검거작전은 시진핑 (習近平) 국가주석이 대대적으로 부정부패척결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합회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반청복명(反淸復明;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복구하자는 것) 운동을 했던 삼합회가 뿌리라는 설이다. 사료에 따르면 반청(反淸) 활동에 나섰던 삼합회가 있었다. 푸젠(福建)성 일대 5명의 소림사 승려들이 주도를 했으나 실패를 했고 지하조직 활동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직의 본래 이름은 명나라를 상징하는 홍(洪)을 넣어 ‘홍문’(洪門)이라 불렸다. 그러나 지하활동에 들어가면서 한자 ‘홍’(洪)자를 ‘三八卄’(숫자로 3, 8, 20이란 뜻)자로 분리해 암호로 썼고 이게 훗날 ‘삼합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런원리스에 따르면 홍콩에서 범죄조직은 영국의 지배가 시작된 1842년부터 자생적으로 생겼는데, 이 범죄조직들이 삼합회와 연관을 맺은 것은 1909년의 일이다. 흑골인(黑骨仁)이라 불렸던 ‘용의당’(勇義黨) 조직의 두목은 모든 범죄조직을 계파로 흡수하는 조직을 구성하고 협의를 통해 서로간의 충돌을 피하도록 했다.

홍콩 경찰이 정리 보관하고 있는 삼합회 관련 자료 ‘0기’(記)에 따르면 흑골인이 홍콩의 각 범죄 조직을 통합하면서 내륙에서 역사가 깊은 비밀조직 삼합회 형태로 바꿨다. 홍콩의 범죄조직 삼합회가 탄생한 것이다.

사실 오랜 지하활동을 벌인 전통 삼합회의 여러 의식과 조직 운영방식은 중국혁명 지도자 쑨원(孫文·1866∼1925)조차 “(삼합회의 조직운영은) 의리를 강화하고 충성심을 키운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이후 삼합회는 각 계파의 우호를 높이기 위해 조직이름에 ‘화’(和)를 넣도록 했다. 처음 언급한 조직이름이 워싱워다. 이 밖에 ‘워콴잉’(和洪勝), ‘워훙싱’(和勇義), ‘워온록’(和安樂) 등의 계파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콩 삼합회는 경찰과 오랜 유착관계를 형성해왔는데 1925년 홍콩 노동자파업 때 경찰이 삼합회를 이용해 진압했을 정도다. 당시 삼합회의 범죄활동은 공공연했다. 홍콩내 모든 우물을 강제로 점령해 물을 팔았다. 물 한 동이 값은 당시 50근의 쌀을 살 수 있었던 1위안이었다. 물론 번 돈을 경찰과 사이좋게 나눴다. 1941년 일본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삼합회 활동이 주춤해졌다.

이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후퇴한 국민당의 잔여세력이 합류하면서 삼합회는 발전의 전기를 맞는다. 무엇보다 군 특수부대 출신들이 홍콩 삼합회를 장악하고 나섰고 대만내 범죄조직 ‘죽련회’(竹聯會) 등과 연계를 하면서 국제화되기 시작한다. 국민당 군의 잔여세력 조직으로 유명한 것이 ‘14K’다. 14K는 전 국민당 군 93사단 연대장 거자오황(葛肇煌)이 광저우(廣州) 일대 삼합회 조직을 활용해 정보 수집활동에 나선 것이 모체가 됐다. 조직 사무실이 광저우 시내 14호 건물에 위치한 것에 국민당의 이니셜 K를 넣은 것이 조직이름이 됐다. 이 조직은 홍콩으로 와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홍콩을 주름잡았다. 한때 조직 회원수만 20만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경찰과 밀착하는 홍콩 삼합회의 전통은 계속됐다. 1968년 홍콩을 뒤흔든 사건이 소위 ‘5억 탐장’(探長)사건이다. 탐장은 경찰의 고위 간부의 직위다. 당시 홍콩 경찰에서 중국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직이었다. 이 직에 있었던 인물이 실은 홍콩 삼합회와 밀착해 조직을 쥐락펴락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 탐장의 이름은 뤼러(呂樂). 5억은 당시 정체가 드러난 뒤 도주한 그를 잡기 위해 홍콩 경찰이 내건 상금의 액수다. 뤼 탐장은 2010년 대만에서 사망할 때까지 편안한 삶을 보냈다. 홍콩 범죄조직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 합법적인 사업에도 많이 진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사를 차린 것이다. 지금 홍콩의 영화계는 삼합회의 계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선전 호텔 사건 한 달 후인 지난 4월 29일 외신에 삼합회 관련 짧은 기사가 보도됐다. “홍콩 영자지 스탠더스는 삼합회 주요 조직 워싱워의 고위 조직원으로 알려진 T(30) 씨가 (4월) 28일 정오 홍콩 ‘셩수이’(중국명 상수이·上水)의 한 병원 밖에서 괴한 2명에 의해 도끼·식칼 등으로 난도질 당해 숨졌다고 전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길바닥에서 의식불명의 T 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1시간 만에 사망했다.”

역시 워싱워 계파가 당한 것이다. 선전 호텔 사건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지금도 홍콩의 한 구석에서 삼합회 조직원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암흑사회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