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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관동대학살 사건이란?

GODblessus 2023. 12. 23. 16:30
  관동대학살 사건이란?


 1923시민연대(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 시민연대)는 22일 '관동조선인대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초안을 마무리해 조만간 특별법 제정에 뜻을 같이해 온 민주당 유기홍 의원실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동조선인대학살사건이라고도 하고 관동대학살사건(간토대학살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최대 진도 7, 규모 매그니튜드 7.9의 대규모 지진이 일본 간토지방에서 발생합니다.  일본 기상청 기록에 의하면 사망자 99,331명, 행방불명 43,476명, 가옥 전파 128,266동, 반파 126,233동, 소실 447,128동, 유실 868동이라고 하니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지진은 일본의 중심지인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영향이 컸는데, 도쿄·요코하마에서는 화재로 인한 피해가 대부분으로 사망자가 6만명에 달하고, 건물 붕괴로 인한 압사자는 도쿄에서 확인된 수가 2천명 안팎이었습니다.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은 엄청난 자연재해였지만, 일본측은 단순히 자연 재해로 끝내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해서는 안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는데 이 재난으로 인하여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민중운동이 점차 조직화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우익과 점차 충돌되는 양상이었고, 하라 다카시 총리 암살등으로 천황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외부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항일운동이 강화되고,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이 고전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입니다.
 


 지진 발생 다음날 발족한 야마모토 곤노효에 내각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명분과 위기의식을 조성해야 했는데, 이 위기의식을 조성하는 데 재일조선인과 공산당원을 이용합니다.
 즉, 일본 측은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재일 조선인이과 공산당원이 폭동, 방화, 우물에 독극물을 넣는 등 행위를 한다고 조작하여 날조된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민간에 유포합니다.
 유언비어의 유포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일본민중들이 확신할 수 있도록 유언반, 지휘반, 실행반 등의 공작대를 조직하여 그들 공작대로 하여금 방화, 우물 내 독극물투입 등의 테러 행위를 감행토록 하여 마치 조선인들이 자행한 것처럼 조작하였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인들은 조선인 폭동설을 그대로 믿고, 그 보복책으로 각 지방별로 자경단을 조직하여 죽창과 꼬치, 몽둥이 등을 들고 길거리는 물론, 주거지까지 침입하여 조선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습니다. 학살된 조선인 피해자의 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승학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6066명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에서 "당시 일제 자경단이 칼로 만삭의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치에서의 만행은 전 세계적으로 모르인 이가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의 731부대 만행이나 관동대지진대학살사건등은 아직도 국제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이번 '관동조선인대학살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려 다시는 이런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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